손톱만한 행복만들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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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호 34면

손톱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손톱 손질의 기초 용어들큐티클을 푸셔로 민 뒤 니퍼로 루즈 스킨과 함께 제거한다. 그 다음 샤이닝 버퍼를 이용, 네일 표면을 고르게 정리한다. 마무리로는 하드너와 큐티클 오일을 발라준다.

그 여자의 사전여자가 무심했던 시간동안 그 여자만 빼고 모든 여자가 다 한번쯤은 해본 듯한, 그래서 여자의 가장 확실한 변신의 계기가 되어줄 일



새해 결심은 뭘로 해줄까.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동해로, 산으로 달려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아침밥도 다 먹었을 무렵에서야 느지막이 일어나 생각을 떠올려봤다. 사실 이젠 해가 바뀌어도 설렘보다는 시큰둥한 마음이 우선이다. 그래도 꼬박꼬박 어김없이 숫자를 달리하며 찾아와주는 새해에 대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의무감으로 새해 결심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그동안 새해를 너무 많이 맞은 탓일까. 숱한 실패의 기억과 참신한 결심에 대한 강박으로 새해 결심은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은 지키기가 힘들어서, 어떤 것은 지키고 싶지가 않아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요즘의 트렌드라는데, 작지만 확실하게 내가 행복해질 새해 결심이 뭘까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하다 뜯겨진 손톱에 눈이 갔다. 맞다, 손톱!

그리하여 이 여자의 올해 결심은 손톱 손질로 정해졌다. 작은 계기가 있긴 했다. 연말에 십여 년 만에 갔던 여고 동창회 때문이었다. 해가 갈수록 부티나는 동창들 사이에서 기죽는 내 모습이 싫어 은근 기피했던 동창회였다. 부스스한 외모로 나타나는 나를 볼 때마다 그래도 “글 쓰는 똑똑한 친구”라며 추켜세워주던 친구가 있었다. 반가움에 손을 내밀었는데 친구가 내민 손에는 작고 귀여운 손톱에 알록달록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하필 바쁜 마감을 끝내고 달려간 내 손톱은 톱니처럼 너덜너덜한데다 군데군데 까만 때도 끼어 있었고. 부끄러워 손을 확 뒤로 숨겼지만 놀랐던 건 내 지저분한 손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여고 때만 해도 가엾다 싶을 정도로 쬐그맣게 박힌 애기 손톱을 부끄러워하던 아이였다. ‘말초부위 미성숙증’이라 놀림을 당했던가. 하여간 “손에 콤플렉스 있다”며 잘 보여주지도 않던 친구였다.

손이 자랑스럽지 않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곰발바닥 혹은 솥뚜껑에 흔히 비유되던 이 손이 미워서 매니큐어는커녕 반지 한 번 끼어보질 않았다.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언젠가 남자가 이 두툼한 손을 잡고 덜컥 놀라 달아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연애를 포기할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 구박받던 두 여학생의 손이 세월이 지나 이렇게 팔자가 달라지다니. 나는 그때 내 손에게 미안했다. 기회가 되면 내 손에 관심과 광명을 되찾아 주리라 마음먹었다.

정해놓고 나니 이 새해결심, 마음에 들었다. 거창하게 운동을 하겠다거나 살을 빼겠다며 매일매일 스트레스를 받아 지키지 못할 일도 아니고, 책을 몇 백 권 읽고 여행을 자주 다녀 내면을 알차게 해봐야 겉으로는 티도 안 나고 돈이 많이 들어 별로 지키고 싶지 않은 결심도 아니다. 한 달에 1만~2만원이면 내 외모가 아름다워지는 생애 최초의 결심이라니, 벌써부터 동창회에 나가 괜히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해졌다.

하지만 이 작은 결심에도 장벽은 있었다. 그동안 손톱 손질을 생각 못 했던 것도 아니다. 길거리에 흔한 게 네일숍이고 젊은 친구들에게는 밥 먹고 이 닦는 일만큼이나 자주 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자꾸 겁이 났다. 가서 또 “어머 손을 어떻게 이렇게 오래 방치해두셨어요”소리를 듣지나 않을까. 꾀죄죄한 꼴로 가서 ‘손톱이 아니라 머리랑 화장부터 하고 왔어야 했어’라고 후회하면 어떡하지.

사실 이 새해결심은 이맘때쯤이면 실천을 한 뒤에 성공기로 쓰고 싶었다. 아직은 네일숍 앞에서 망설이기만 한다. 그러니 새해가 지난 지 2주쯤 되는 오늘 버전의 새해 결심은 ‘용기를 내어 네일숍 문턱 넘어서기’로 바뀌었다. 설마 올해만큼은 이 작고도 확실한 결심을 이루어 행복해 질 수 있겠지. ●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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