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쟁은 없다” … 대화 공로 챙기고 비핵화 관망 추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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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전쟁은 없다. 나는 전쟁을 예상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평화가 지속할 것이다.” (10일 백악관 기자회견)

문 대통령 “대화로 북 비핵화” 설득 #신년회견 때 “압박 지속” 안심시켜 #트럼프, 통화 뒤 대북 유화 발언 #비핵화 안 이어지면 돌아설 수도 #백악관 “펜스 부통령 평창 방문 #북한 도발 억제 메시지 담아”

“나도 핵 버튼이 있고 김정은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다. 그리고 내 핵 버튼은 작동도 한다.” (2일 트윗)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이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이후 대북 발언을 확 바꿨다. 발언 수위만 보면 대북 태도의 중대한 반전이란 평가까지 나왔다(ABC방송).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문 대통령과의 통화 후 열린 각료회의에선 “남북대화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성공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수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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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와의 기자회견에선 “우리는 확실히 북한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지금 좋은 대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며 “좋은 기운(energy)도 많이 볼 수 있어 매우 좋다”고 했다.

“북한과 전쟁은 없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없다(No). 나는 전쟁을 예상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우리는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며 오랜 기간 평화가 지속하도록 만들 것”이라고도 말했다. CNN 방송은 이런 변화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핵전쟁도 불사할 것 같던 레토릭의 전환을 꾀하면서 ‘리틀 로켓맨’에게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줬다”고 해석했다.

한·미 정상의 ‘메시지 싱크로율’도 높아졌다. 10일 밤 한·미 정상 통화 뒤 양국이 각각 내놓은 보도자료는 핵심 내용이 상당 부분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조건으로 “적절한 시점과 상황 하에서(at the appropriate time, under the right circumstances)”를 명시했다는 내용은 양측 발표가 똑같았다.

엿새 전 통화 때 “양 정상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는 데 동의했다”는 대목이 백악관 발표에만 포함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청와대만 발표한 것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 같은 트럼프의 반전은 문재인 대통령이 4일과 10일 두 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남북대화로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이끌겠다”는 설득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본 입장”임을 분명히 하고 “남북대화를 하더라도 최대한 압박 정책은 지속한다”고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남북대화 성사와 평창올림픽 성공이란 공로는 챙기면서 북한에 대한 설득 여부는 문 대통령에게 공을 넘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발언들도 수사일 뿐 북·미 대화 성사의 핵심은 ‘적절한 시간과 올바른 조건’에 있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외교소식통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의 입장이 대화로 큰 흐름이 바뀐 건 분명하다”면서도 “서두르기보다는 올림픽까지 남북대화를 지켜보면서 북한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할지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도 “‘진정성 있는 비핵화 대화를 할 의향이 있지만 북한의 도발은 제재로 응징하고, 동맹을 위협하면 군사행동도 고려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평창올림픽 참석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위협 억지를 강조했다. 백악관은 “펜스 부통령은 미국의 단호한 의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기 위해 올림픽에 간다”고 밝혔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잘 진행돼 핵 문제에서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그 이후에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도 된다고 보고 있다”며 “이를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하라”=북한은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연 지 이틀 만인 11일 한·미 합동 군사훈련의 중단을 공개 요구했다. 북한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이날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조선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를 바란다면 외세와 함께 동족을 반대해 벌이는 온갖 군사적 행동부터 중지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노동신문은 “상대방을 위협하며 침략하기 위한 무력증강과 외세와의 대규모적인 합동군사연습은 북·남 사이의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키고 조선반도 정세를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국면에 몰아가는 주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남북대화 과정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지를 내걸겠다는 예고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유지혜·박유미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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