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IT기업보다 더 IT 기업처럼 변해야…사느냐 죽느냐 갈림길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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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 바뀔 것인가, 그게 생사를 가를 것이다."

"중국 시장 위기, 굉장히 심각했다…좋은 주사 #비판 댓글도 봐…우리가 잘해야 겠다는 생각" #"미래차,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제대로 할 것" #인생 얘기 묻자 "소주 한잔해야 말할 수 있다" #CES 전시장 곳곳 둘러보고 제품 직접 체험해 #"한국 돌아가면 노사 임금 협상 먼저 챙길 것"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자동차가 전자화되고 친환경차로 가면, 일하는 방식 등 모든게 달라져야 한다. 경쟁사들도 다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에서다. 정 부회장은 "의사결정의 방식과 속도 등 여러가지가 IT(정보기술) 업체보다 더 IT 업체 같아져야 한다. 큰 과제다”고 덧붙였다.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덩치 큰 기업도 한순간 뒤처지면 사라지는 시대다. 신기술 전쟁터인 CES(소비자가전박람회)는 그 사실을 눈으로 보여준다. 겉은 화려하지만 생사가 갈리는 잔인한 현장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CES 현장에서 ‘생사'를 말한 이유다.

 특히 현대차는 지난해 유례없는 위기를 경험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전년 대비 28.2% 판매가 감소하는 참혹한 성적을 받아 들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위기에 대해 “사실 굉장히 심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절박함이나 위기만 말한 건 아니었다. 그는 위기를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표현했다.

“심각했고, 그래서 좋은 주사를 맞은 것 같다. 상품과 조직, 디자인 등 모든 부문에서 많이 변화했다. 연구소 조직도 중국으로 옮기고 현지에 맞는 상품을 계발하는 계기가 됐다. 올해나 내년부터 그 효과가 날 것이다. 어려웠지만, 또한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현대차를 향한 많은 비판에 대해서도 정 부회장은 비슷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현대차를 향한 안 좋은 댓글들을 보느냐는 질문에 “안 볼 수가 없다. 보긴 하는데, 문제는 (비판이 많은 것보다) 많이 보면 오히려 댓글에 둔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판에 무뎌지는 걸 경계한 것이다. 그는 "말이 되는 악성 댓글은 ‘내 탓이다’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잘해야 겠다’고 생각한다”며 “주위에서 (나쁜 점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의 부족한 점에 대해 정 부회장은 숨김 없이,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가 품질 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더 품질을 올려 포르쉐 수준이 돼야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에 있어서도 “잘하고 있지만 역사가 짧고 글로벌 업체를 쫓기 바쁘고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진)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부터 내부 R&D 인원들이 실패를 개의치 않는 분위기가 되면 다른 브랜드의 장점을 많이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성에만 그친 건 아니다. 한바탕 위기를 겪은 덕인지 확고한 미래 전략을 제시했고, 자신감도 드러냈다. 정 부회장은 “중국시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정상화 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올해 90만 대, 많게는 100만 대까지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지난해 말에도 중국 시장 판매는 여전히 부진했지만, 감소 폭이 조금씩 줄어 드는 추세였다. 또한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동남아 시장 공략에 대해서도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오히려 차별화를 해서 시장에 진출하면 더 승산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확실한 전략을 세우면 (시장 점유율) 25% 정도는 바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자율주행, 차량 공유 서비스, 스마트시티 등에 대한 철학도 드러냈다. 그는 미래 이동 서비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계속 파트너를 만나고 있고, 준비를 하고 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은 좀 아닌 것 같고, 제대로 하고 실속이 있는 게 중요하다. 안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려고 늦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미래를 향하더라도 기본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정 부회장은 “미래 사업 방향성은 넓을 수 있지만 결국 안전ㆍ보안ㆍ품질이 중요하다”며 “경쟁사에서 하는 신기술을 우리도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 얼마나 더 앞서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이날 정 부회장은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여유로운 모습도 보여줬다. 인생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소주를 한잔해야 (답이) 가능할 것 같다"며 "후회가 더 많아서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웃어 보였다. 또한 글로벌 무대에 서서 발표하는 것에 대해 "도요타 아키오 사장처럼 재밌게 하는 건 좀 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편하게 생긴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전달력이 좀 더 좋아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CES 개막 첫날인 이날 도요타ㆍ벤츠 등 완성차 업체 부스를 빠짐없이 둘러봤다.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바이톤의 부스에도 들러 전시 차량을 관람했고, 자율주행을 위한 센서 등을 만드는 모빌아이 전시장도 방문했다. 또 삼성과 LG 부스를 찾아 전시품을 직접 조작해보기도 했다. 그는 모터쇼보다 CES에 더 열심히 참석하는 이유에 대해 “신기한 제품을 다루는 회사들도 많고, 재밌어서”라고 답했다.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협업을 위한 만남도 이어갔다. 인텔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최고경영자(CEO), 모빌아이 CEO 암논 샤슈아를 만났고, 인텔과 함께 양대 ‘자율주행 동맹’을 구축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도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만날 예정이다.

정 부회장은 “한국으로 돌아가면, 노ㆍ사 임금협상 타결이 아직 마무리 안 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가장 먼저 챙겨야 하고, 또한 해외 권역별 조직개편 진행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 현대차]

라스베이거스=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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