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지금부터가 중요…언제든 北 도발 재개할 수 있어

중앙일보

입력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9일 밤 우리 정부 발표)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10일 새벽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
남북 고위급회담의 공동보도문 3항을 두고 남북이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남측의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라는 표현은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러나 북측의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은 미국을 배제하겠단 의미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측이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식 표현을 고집해 관철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남북 공동발표문에서 문구가 서로 다른 경우가 간혹 있었다. 이에대해 조 장관은 10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 민족끼리'라는 건 북한이 과거부터 쓴 언급이고, 과거 합의에도 이 표현이 들어간 적이 있다"며 "북측의 표현이나 주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 당사자" vs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 #남북 고위급 회담 공동보도문 미묘한 시각차…살얼음판 평화 #국방부, 군사회담 준비 진행…"평창 올림픽에 의제 한정하겠다"

남북 고위급회담을 보도한 노동신문 10일자 5면. [노동신문 캡처]

남북 고위급회담을 보도한 노동신문 10일자 5면. [노동신문 캡처]

하지만 단순한 표현의 차이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간엔 북한이 앞으로 남측에 보낼 청구서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9일 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는 남측이 아닌 미국과 논의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선권 수석대표는 “이 (비핵화) 문제를 박아 넣으면 (중략) 좋은 성과를 마련했는데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비핵화 문제는 남측과 논의하지 않으면서 남측에 대북 지원이나 경제 협력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북한이 앞으로 이 조항을 근거로 남측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공조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할 수 있다”며 “남북의 동상이몽이 드러난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이 '절반의 성공'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남북이) 합의했다고 비핵화를 풀어나가는데 국제사회와 공조를 안 하겠느냐”며 “비핵화뿐 아니라 남북관계와 관련에 북측에 할 얘기를 다 했다”고 말했다. 남측이 제안한 2월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공동보도문에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 조 장관은 “‘남북관계를 좀 더 풀어나가면서 같이 보자’는 게 북측의 입장이었다”며 “남북이 합의한 각급 회담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양측 대표단이 종료회의를 열고 있다. 리선권 위원장이 서해 군 통신선 보도 등과 관련해 강한 톤으로 이야기를 하고있다.<사진공동취재단>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양측 대표단이 종료회의를 열고 있다. 리선권 위원장이 서해 군 통신선 보도 등과 관련해 강한 톤으로 이야기를 하고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남북대화의 앞날엔 지뢰가 곳곳에 깔려있다. 당장 평창 올림픽(2월9~25일)이 한창 진행 중일 2월16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로, 북한이 ‘광명성절’이라 칭하며 각종 도발 계기로 삼아온 날이다. 설령 패럴림픽(3월9~18일)까진 조용히 넘어간다고 해도 4월엔 또 김일성 생일인 소위 ‘태양절’(15일)이 포진해있다. 남측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북한은 언제든 도발 버튼을 누를 수 있다.
향후 남북 관계의 시험무대는 9일 양측이 합의한 군사당국회담이 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10일 군사회담 준비에 착수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아직 남북 군사 당국회담에 나설 우리측 대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유관 부처와 충분히 상의한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담 의제는 평창 올림픽에 관한 것으로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단ㆍ응원단을 포함한 대규모 방문단이 북한에서 내려오는 만큼 육로 또는 해로 통행 수단이나 방법ㆍ절차, 통신수단 등을 실무적으로 협의하는 데 초점을 둔다는 뜻이다. 이르면 이번 주 말 북한 측과 남북 군사 당국회담에 대한 협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한은 회담에서 평화환경 조성의 명목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미국 전략자산 전개 중지를 꺼내고 싶어하지만 처음부터 바로 제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요구에 대해 탄력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문제는 대북 확성기를 내준다면 대신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받아낼 것이냐는 점이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이 대북 확성기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에 쉽게 양보하면 안된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 또는 재발 방지를 확실히 받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철재ㆍ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