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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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린이날 모처럼 교실에서 「어린이 헌장」을 소리내어 읽어본 교사들은 한결같이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
특히 제7조『굶주린 어린이는 먹어야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온 교실이 떠나갈듯 웃음바다가 된다.
이「어린이 헌장」은 6·25동란을 겪고 난 1957년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굶주리고」 「별들고」하는 복지문제에 너무 치우쳐있다. 주체적 인간으로서 어린이의 권리가 담겨져 있지 않다.
말하자면 「영양실조」만 걱정했지 「문화실조」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오늘의 어린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어린이 헌장」을 어른만 이해하는 어린이 헌장이라고 서슴없이 비판한다.
작년 YWCA어린이 교실에서는 어린이들 스스로 만든 「어린이 헌장」이 소개된 일이 있었다. 그 내용이 제법 의젓하다. 책임과 의무도 들어있다.
▲어린이는 마음껏 놀수 있어야하고, 마음껏 배울 수 있어야한다. ▲어린이들은 웃어른을 잘 모시고 친구를 이해해야 한다. ▲어린이는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해야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극복하는데 힘써야 한다….
이처럼 어른스러워진 어린이들에게 일방적인 보호만 강조하는 것은 난센스다.
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이 너무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은 꼭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미국 에머리대의 「스트릭랜드」교수(가정사)는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겪어야할 한 과정인 소년기가 요즘엔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소년기의 아이들이 할만한 일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대신 요즘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흉내내며 놀고 있다고 「스트릭랜드」교수는 개탄한다. 모두 TV의 영향때문이라는게 그의 결론이다.
이처럼 가치관이 크게 달라진 어린이들에게 적합한 「어린이 현장」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사회공동체 의식을 강조, 미래사회의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고 충고한다. 그뿐 아니라 진정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헌장이 되어 인간으로서 어린이의 권리를 존중해 주고 첨단과학시대와 공해시대의 환경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다운 어린이」로 기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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