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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령’이라 불리는 사나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강형욱 동물조련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형욱 동물조련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EBS TV 프로그램이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제목과 달리 세상의 온갖 나쁜 개가 등장한다.

죽기 살기로 싸우거나, 사람에게 덤벼들거나,

아무 데나 용변을 보거나 하는 별의별 개들이다.

천방지축 개들에게 진절머리가 날 때쯤 등장하는 이가 있다.

반려견 행동 전문가 강형욱씨다.

이때부터 개들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연출된 영화에서처럼 개들이 순한 양으로 변한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이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제목이 현실이 된다.

매번 이러하니 시청자들은 그를 두고 ‘개통령’ ‘갓형욱’이라 일컫는다.

그를 만난 건 지난해 3월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경기도 남양주시 보듬컴퍼니 교육장을 찾아갔다.

3층 건물 뒤편 넓은 교육장에서 강아지 예닐곱 마리가 뛰놀고 있었다.

울타리로 다가가 근처에서 놀고 있는 강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강형욱씨였다.

목소리뿐 아니라 표정도 여지없이 단호했다.

“강아지에게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무턱대고 다가가는 건

강아지에게 위협적일 수 있습니다. 강아지는 먼저 냄새를 맡고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면 다가갑니다. 강아지들의 인사법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무안했지만 강아지들의 인사법을 이제야 배운 데 대한 고마움이 앞섰다.

그가 훈련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중3 때였다고 했다.

개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는 중3 아들의 고백, 어머니에게는 청천벽력이었을 터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눈물만 떨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가난한 살림 때문이었다.

강형욱 동물조련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형욱 동물조련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금도 기억합니다. 1999년 12월 24일입니다.

수원시 이의동 장애인 도우미 강아지 훈련소에 들어갔습니다.

온갖 궂은일을 다했습니다. 2년 뒤 경찰견 훈련소로 옮겼습니다.

2005년 군대에 갔고 제대 후 호주·일본·노르웨이 훈련센터에서 연수했습니다.”

그가 입·손·다리 등에 난 상처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훈련소에서 혼자 80마리까지 돌본 적도 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똥을 치우고, 밥을 주고, 물을 먹였습니다.

훈련소 형들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잠자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듣고 보니 순탄한 삶이 아니었다.

특히 개에게 물린 입가 흉터는 아직도 확연하고 또렷했다.

그런데도 그의 삶은 오롯이 강아지를 향해 있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으러 교육장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눈 마주친 강아지 앞에 그가 무릎을 꿇었다.

금세 무릎이 젖을 정도로 땅바닥이 질퍽했건만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그의 품에 이내 강아지가 안겼다.

그 순간 강아지를 품는 그의 표정,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사실 그곳에 있는 강아지들은 죄다 문제가 있어 온 게다.

그런데 득달같이 그의 품에 안기는 이유가 뭘까?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저는 훈련이란 말을 싫어합니다. 함께 노는 게 곧 교육입니다.”

‘함께 노는 것’, 하나같이 강아지들이 그의 품에 안기는 이유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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