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봉건제 아직도 그대로 … 영 여왕 소유'사크'섬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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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크섬의 영주가 사는 성. 내부는 공개되지 않지만 정원은 관광객이나 주민들을 위해 공개된다(사진위). 자동차가 없는 사크섬에서는 주민들이 마차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사크섬 홈페이지]

유럽 유일의 봉건제 미니 자치지역인 '사크' 섬이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다. 자동차도 도로도 치과의사도 없이 그야말로 중세시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사크는 영불해협의 4개 섬 중 가장 작은 곳이다. 주민이 600여 명밖에 안 되며 프랑스에선 30여㎞, 영국에선 120여㎞ 떨어져 있다.

1565년부터 프랑스의 통치에서 벗어난 사크 섬은 형식적으로는 '영국 여왕'의 소유지다. 하지만 영국이라는 국가에는 속하지 않은 채 준독립적인 자치지역의 지위를 누려왔다. 국가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이를 원하지도 않는다. 정치체제는 지주들이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봉건제를 유지해왔다.

AP통신과 BBC는 이러한 사크 섬이 8일 민주주의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직접 뽑은 지주대표 14명과 거주민 대표 14명으로 최고 입법기구(Chief Pleas)를 구성하기로 했다. 의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사크 섬이 이런 결정을 한 까닭은 모든 유럽국가가 민주정부를 구성하고 전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기로 한 '유럽인권협약'을 지키라고 유럽연합(EU)이 계속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 주민들은 오히려 "변화가 싫고 봉건제가 더 좋다"는 반응이다. 어떤 체제로 변화하는 것이 좋은지를 묻는 여론조사에도 165명이 참여했을 정도다.

주민들이 민주주의 체제 도입을 꺼리는 것은 봉건제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훌륭한 요인인 데다 지주들이 자신들을 '쥐어짜지 않기' 때문이다. 사크 섬은 '60㎞에 달하는 아름다운 해변에, 자동차도 한 대 없는 봉건제의 과거 경험'을 강조하며 관광객을 유치해왔다. 섬의 통치자인 영주만이 비둘기나, 난소를 제거하지 않은 암컷 개를 소유할 수 있다는 등의 봉건제 법률은 관광객에게나 이색적인 얘깃거리일 뿐 섬 주민들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일한 현대적 교통수단인 경운기에도 한 번에 한 사람씩 타는 것만 허용되지만 느긋한 생활방식에 익숙한 주민들에겐 아무런 불편도 주지 못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경운기에 실어 섬 밖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 선박으로 옮긴다.

사크 섬의 1년 예산은 60만 파운드(10억2300만원) 정도. 이 중 절반은 직접세로, 나머지 절반은 관광 선박들로부터 걷는 정박세로 각각 충당해왔다. 28명의 새 주민대표를 뽑는 총선은 영국 여왕의 상징적인 허가를 거친 뒤 12월 실시될 예정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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