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은 시간이 없다"…'이면합의' 논란 후 첫 수요집회

중앙일보

입력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소녀상 곳곳을 매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소녀상 곳곳을 매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3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16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무대 옆에 빈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수요시위가 있을 때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2)·길원옥(90) 할머니가 늘 앉던 자리였다. 추위와 건강상의 이유로 두 할머니는 이날 시위에 참석하지 못했다.
 "두 할머니의 시간이 우리가 느끼는 시간만큼 길지 않았음을 이 빈자리를 통해 느낍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가 두 빈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추위·건강 악화로 할머니들은 참석 못해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위로금 반환 등 촉구 #정대협 "올해 할머니들에게 해방 선물할 것"

이날 행사는 새해 첫 수요시위이자 지난달 27일 외교부 직속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이면 합의'가 있었음을 발표한 후 처음 열리는 시위이기도 했다. 윤 대표는 "올해는 할머니들에게 마침내 해방을, 세계에는 평화를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3일 오후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할머니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할머니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체감온도 영하 7도에 육박하는 엄동설한에도 400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이 대사관 앞에 모였다. 사람들은 바닥에 간이 매트를 깔고 앉아 '2015 위안부 합의 무효''우리는 진심이 담기 사과를 원한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참가자들이 털모자와 목도리를 한 평화의 소녀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만졌다. 그리고 노랑 해바라기 화환을 헌화했다.

정대협은 "이른 시일 안에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존중하며 이러한 원칙에 부합하도록 관련 부처는 피해자들과 지원단체의 의견을 반영, 2015년 한·일 합의 무효화를 위한 화해치유재단 해산, 피해자위로금 10억 엔(약 95억원) 반환 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외교부 TF가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지난 합의(2015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 공식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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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무대 옆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앉던 의자가 놓여져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무대 옆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앉던 의자가 놓여져 있다. [연합뉴스]

거의 시위 때마다 참석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날 볼 수 없었다. 정대협에 따르면 지난 1일 김복동 할머니는 건강 악화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현재 입원 중인 상태다. 윤 대표는 "위안부 문제를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 우리 시민들에게 전하던 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김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조차도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다"며 "우리가 할머니들처럼 목소리가 되고 증거가 되자"고 호소했다. 이어서 지난 한 해 숨진 할머니 8명의 이름을 한 명씩 외쳤다.

이날 시위에 나온 청소년 참가자들은 '청소년들이 할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했다. 최가은 청소년평화나비 활동가는 '청소년들이 할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통해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이제 32명만 남아계신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다.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한·일합의 원천 무효, 일본 사죄를 위해 노력하겠다. 저희가 대신 울겠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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