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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만 있고, 기술은 없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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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산업부 차장

최준호 산업부 차장

과학기술을 얘기할 때 과학과 기술은 어떻게 다를까. 흔히 말하는 과학, 즉 사이언스(science)는 물리학·생물학·수학과 같은 자연과학을, 기술(technology)은 과학의 원리를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공학’을 의미한다. 그래서 각각을 수행하는 사람을 두고 과학자와 공학자로 부른다. 하지만 공학자 역시 기술자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응용 과학자’로 부르기도 한다.

신년 초부터 무슨 머리 아픈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세밑이던 12월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7년 한국과학상과 공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과학상은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와 울산과학기술원 화학공학부 교수가 받았다. 공학상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교수가 받았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한국과학상과 공학상을 받은 사람이 교수밖에 없을까. 연구개발 투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에서 연구개발은 대학에서만 한다는 얘기일까. 연간 50조원에 이른다는 민간 R&D를 감당하는 기업 소속 연구자들은 과학자나 공학자가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그들은 교수들에 비해 세계 정상 수준의 연구 업적을 낸 적이 없다는 뜻일까.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과 스마트폰, 세계 1위의 배터리, 태양전지 기술에 대한 연구와 업적이 여태까지 교수들만의 일이었을까.

모르는 척, 상을 주는 과기정통부에 물어봤다.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기업 쪽에서는 추천이 없었다. 2018년부터는 고려해보겠다.” 대답의 뉘앙스 속에는 ‘현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는 느낌이 숨어 있었다. 과학기술 중 기술을 대표한다는 한국공학한림원에 물어봤다. 공학한림원은 공대 교수와 기업인(연구원)들이 회원인 단체다. 공학한림원 측은 “그런 거 우리한테 물어보지도 않는다”고 답했다.

답은 역시 ‘밥그릇’이었다. 실무를 맡은 한국연구재단이 과기정통부 등록 재단인 때문이었다. 반면 공학한림원은 산업통상자원부에 등록돼 있다. 산업부는 기업인만 챙기니, 과기정통부로서는 ‘남의 집 사람’인 기업 연구자는 챙길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쯤 되면 과기정통부를 그냥 과학부라고 부르는 게 나을 법하다. 게다가 자기 집 사람 중 ‘을(乙)’ 신세인 25개 출연연 연구원들은 또 뭔가.

과학과 기술(공학)의 경계는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21세기 유전체 기술의 대표주자인 유전자 가위는 과학이면서 기술이다. 융합의 시대에 ‘자기 사람’만 챙겨서는 당연히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오는 연말 2018년 한국과학상과 공학상은 부처의 경계를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를 가진 과학기술상이 되면 좋겠다.

최준호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