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범초소가 무슨 소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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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꼼짝말고 있어. 소리지르면다 죽여!』
범인들은 날이 선 칼날을 휘두르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복면을 한 2인조. 복면속의눈알이 살기로 번뜩였다.
7일 오후2시, 방범초소를 코앞에 둔 서울불광동 최모씨(39·주부)집 안방.
범인들은 공포에 떠는 최씨와 최씨의 아들, 그리고 놀러온 이웃집 아주머니등 3명의 손발을 전기줄로 묶었다.『돈을 내!』써늘한 칼끝이 최씨의목언저리에서 번뜩였다.
최씨집에는 지난해 8월에 도둑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도둑은 최씨에게 발각되자 그대로 도망쳤다.
그때는「재수가 없다」는 정도였는데 이날은『이번에는 죽는구나』싶은 공포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최씨는 장농속에 있던 8백5O만원이 예금된 통장과 도장을 꺼내 범인들의 손에 넘겨줬다.
「아들놈만 다치지 말았으면…」「그저 빨리 나가줬으면…」하는 생각에서 은행약도까지 친절(?)하게 그려줬다.
그러나 범인등은 용의주도했다.
『아직 끝난게 아니야. 돈을찾아 올때까지 꼼짝말고 있어!』범인중 1명이 은행에서 돈을 찾는 동안 다른 1명은 최씨등 3명을 인질로 잡고 방안에서 대기했다.
그로부터 30분후, 낮털이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한「강도님」들은 여유만만하게 최씨집을 빠져나갔다. 범인들은 최씨집 전화번호까지 알아내고『신고하면 죽인다』고 마지막 으름장을 놓았다.
이날이후 최씨는 전화공포증이 생겨버렸다.『따르릉…』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하고 현관문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쾅쾅뛴다.
『그놈들이 보복할까 두려워 이사를 가야 겠어요. 코앞에 방범초소가 있지만 무슨 소용이예요.』「방범초소 무용론」은 그 한사람만의 생각일 것인가.<안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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