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에너지 전환정책의 성공 요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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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새로운 에너지 정책 체계가 곧 완성될 것 같다. 제8차 전력수급계획이 최종 단계에 있다. 신재생 3020계획은 확정 단계다. 2030년 신재생발전 비중 20% 달성은 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의 출발점이다. 원전과 석탄발전 축소,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그 주요 내용이다. 신재생전력은 올해 6.2%에서 정책목표 20% 달성이 전제된다. 이는 신재생 발전용량을 5배 이상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 비중을 전체 신재생의 85%로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이들이 일사량이나 풍속 변화에 취약하여 이용률이 극히 낮다는 점이다. 이를 감안하면 설비는 엄청나게 늘어야 한다. 정부 발표 110조원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그런 말이다. 더욱이 신재생 생산의 ‘간헐(間歇)성’ 보완을 위한 ‘백업’(Back-up) 투자와 전력망과 연계된 송·변전 비용, 그리고 4000㎢ 정도의 건설부지 비용으로 50조~100조원대 추가비용 발생이 예상된다.

정부의 제8차 전력수급 계획에 #제기되는 비판론도 비과학적 #에너지는 시대적 요청이 아닌 #통상적 정책보다 더 멀리 봐야

필자의 최근 연구(기존 정책자료 활용) 결과로도 2030년 신재생전력 20% 목표와 에너지안보 동시 달성을 위해서는 140조원 수준의 추가비용이 요구된다. 경제성과 수급안정 제고 원칙에서 벗어나 환경성과 안전성 제고를 강조한 정부계획의 기회비용은 100조원대를 상회하는 셈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정부계획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원자력학회의 과잉투자와 전력가격 상승문제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국가에너지 시스템 붕괴를 걱정하기도 한다. 특정 재생발전에 대한 과도지원, 요금제도 등 시장여건 검토 미비, 공공부담 급증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과도한 비판은 성급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정부계획이나 비판적 견해 모두가 일정 부분 비(非)과학적이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가 엄정한 기술과 시장분석, 사회적 합의여건 등 복합과학적 분석이 부족하다. 전력가격에 대한 신뢰할 만한 예측도 아직 없다. 따라서 이번 계획의 시장영향력은 당분간(10년 이내)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전력투자 선행기간이 매우 길고 그 수급탄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규건설 중단에도 2030년까지 원전발전량 비중 변화는 거의 없다.

시론 12/30

시론 12/30

따라서 이제는 정부계획에서 적시된 재생전력설비 확충가능성 검증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그 가치창출 기반인 기술혁신이 매우 느리고 경로의존(Path Dependance)적 특성이 강해 실용화 초기에 봉착할 한계점에 유의해야 한다. 연구개발 과정에는 부정적 외부비용이 무시되지만 실용화 단계부터 수명주기 전체에 걸친 외부비용이 한꺼번에 반영되는 속칭 ‘죽음의 계곡’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정부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신재생 보급이 극히 저조한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급속한 신재생 확대와 에너지안보 우려를 연계하는 이유다. 따라서 에너지 투자 효과는 10년 이상 지속된다는 ‘잔존(Long Tail)’ 현상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요구된다.

우리 정부계획에서도 2022년까지 초기단계 재생에너지 설비확충은 전체 증설분의 10% 이하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2022년 이후 ‘죽음의 계곡’을 건너 대량 증설이 가능할까? 적정 시장혁신동력의 지속적 축적 없이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정책 변화에 대한 논란보다 전문가 영역인 에너지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정치 ‘이슈’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는 장기적(2030년 이후) 국가 에너지 체계 급변가능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특히 S자 형태 점진적 혁신 과정보다 개혁정체 후유증으로 인한 단기급변 ‘빅뱅’(Big Bang) 현상 도래에 유의해야 한다. ‘빅뱅’ 도래는 에너지 체계의 급격한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개별 에너지원별 대책보다 국가 에너지시스템의 동태적 합리화와 국익 기여도를 중시하는 다음과 같은 에너지 전환(transition) 정책 기본원칙의 철저한 준수가 요구된다. 1) 모든 에너지는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상생구조 형성만이 최고수준 가치창출의 관건이다. 2) 에너지문제 해결은 복합과학적 접근을 요구한다. 우리 여건에 적합한 기술평가 체계와 외부비용 검증절차를 조속히 확정하여야 한다. 3) 에너지는 지속 가능한 민생복지의 기초이기 때문에 특정시대 가치만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 통상적 경제정책보다 더 멀리 보아야 한다. 4) 에너지 부문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윤(Rent)과 비용배분에 관한 정의(正義) 확립은 모두에게 엄격해야 한다. 정부를 포함한 공공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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