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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폐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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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정부의 전격적인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개성공단 중단의 근거로 발표된 공단 근로자 임금 전용과 관련해 통일부는 근거 불명확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대통령 서면보고 과정에서 최종 삽입됐다고 통일부의 정책혁신위원회가 28일 밝혔다.

통일부 정책혁신위 100일간 지난 정부 대북정책 검토 결과 발표 #"개성공단 폐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진행" #"지난해 2월 10일 NSC개최 이틀전 박 전 대통령이 구두 지시" #적법절차 따랐다는 정부 기존 설명과 달라, 국민의 기본권 침해 #통치행위도 헌법과 법률 따라야 한다는 지적 #DJ, 노무현 정부 대북송금과 NLL발언등과 형평성 논란일 수도

김종수 통일부 정책혁신위원장이 28일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용수 기자

김종수 통일부 정책혁신위원장이 28일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용수 기자

9월 20일 출범한 일종의 ‘적폐청산위’격인 혁신위는 이날 100일 동안의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9명의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혁신위는 개성·금강산 분과, 교류·지원분과, 법·제도 분과, 통일교육 분과로 나눠 지난 정부의 정책을 검토했다. 김종수 혁신위원장은 이날 “정부가 지난해 2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를 열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기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이 외교안보수석(김규현)을 통해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에게 ‘개성공단을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공식 의사결정 체계의 토론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의 일방적인 구두 지시로 개성공단의 전면중단이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는 “통일부를 중심으로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안보에 관한 공식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이뤄져 왔다”는 기존 설명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정부의 공단 중단 조치를 적법절차 위반 및 국민의 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기업인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자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고 관련자들에게 설명하는 등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적법절차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혁신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기로 하는 원칙적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하루 뒤인 8일 오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통일부 장관에게 개성공단을 철수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를 통보했고, 같은 날 오후 국가안보실장(김관진)이 회의를 소집해 통일부가 마련한 철수대책안을 기초로 사실상 (공단 폐쇄의) 세부계획을 마련했다. 이후 2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가 공단 전면중단을 협의하고 홍 전 장관이 공식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 임금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는 근거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 통일부는 전면 중단에 반대하며 단계적 중단을 주장했고, 임금 전용의혹에 대한 증거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이 내용을 발표문에 포함하는 걸 반대했지만 청와대 논의과정에서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혁신위는 “2월 10일 NSC는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혁신위원인 임성택 변호사는 “국가안위상황에서 대통령이 긴급 재정 처분 근거가 있는데 그 조치 형식도 아니고, 남북교류협력법에 조정명령 제도가 있는데도 이를 이용하지도 않았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절차법을 따르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위는 “박 전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하게 된 과정과 경위를 확인할 수 없어 다른 절차를 통해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에 있어 법을 뛰어 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법률에 근거해 일관성 있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혁신위의 이런 판단은 대통령의 ‘통치행위’ 범위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혁신위가 재산권 보호와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로 봤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대통령의 통치행위 범위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또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송금이나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여당측에서 통치행위로 주장하고 있는 것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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