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權 비자금' 민주 분당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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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권노갑 비자금'수사를 현대에서 SK 등 다른 기업으로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자 민주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민주당의 2000년 총선자금 전모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당 논의에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權전고문의 핵심 측근인 이훈평(李訓平)의원은 1일 "무슨 게이트만 터지면 권노갑 돈이냐"면서 "김영완의 진술은 신빙성 없는 얘기지만 지금 나서서 공박하면 사건만 커지기 때문에 입다물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16대 총선 때 조직 쪽을 맡았던 박양수(朴洋洙)의원도 "당으로 들어온 것은 權전고문이 밝힌 1백10억원 외에는 없다"고 잘랐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쪽도 공식 대응은 피했지만 수사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한 측근은 "검찰이 진짜 뭘 갖고 있는거냐. 權전고문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할 분은 아닌데 말이 너무 다르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였다.

구주류 쪽에선 "현대건이 공소시효가 끝나 기소가 어렵게 되자 다른 곳을 찾고 있는 것 아니냐""김영완의 진술을 언론에 흘려 구주류를 흠집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신주류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구주류와 한나라당으로부터 '권노갑 장학생'이란 공격을 받고 있어서다.

이날 오전 열린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에서 박주천(朴柱千)총장은 "권노갑씨가 다른 기업에서도 추가 비자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현대 비자금은 민주당 검은 자금의 구우일모(九牛一毛)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권노갑 장학생'들은 당명만 바꾸면 면죄부가 씌워지는 것처럼 착각하고 신당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고 신주류를 공격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개회된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신주류 내부에선 구주류와 절연(絶緣)하는 이른바 '선도탈당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신기남(辛基南).천정배(千正培).정동영(鄭東泳)의원 등 신주류 의원 8명은 1일 긴급 심야회동을 하고 오는 4일 당무회의에서도 임시 전당대회 소집이 무산될 경우 집단탈당키로 결의했다. 千의원은 회동 후 "위임장을 맡긴 의원도 상당수"라며 "50명 정도는 탈당함으로써 원내 2당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탈당세력 확대에는 정대철(鄭大哲)대표와 김원기(金元基).김근태(金槿泰)고문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들에게도 탈당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키로 했다. 辛의원은 "중진들이 소장파보다 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오늘 모임의 결론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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