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 성능 일부러 떨어뜨려” … 해외 소비자 집단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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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속도를 떨어뜨린 사실을 인정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배터리 기능 저하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게 애플의 입장이다. 하지만 신제품인 아이폰X의 판매를 늘리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배터리 잔량 줄면 속도 느려져 #신제품 판매 늘리려는 ‘꼼수’ 비판 #피해자들 승소 땐 애플 큰 타격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 곳곳에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 직전에 벌써 4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집단소송이 이어질 조짐이다. 구형 아이폰의 구동 속도가 늦어졌다는 주장은 이달 초부터 나왔다.

미국 뉴스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에서는 “배터리 잔량이 떨어지면 아이폰 속도가 느려지도록 운영체계(iOS)를 변경했다”는 의혹을 제기됐다.

아이폰 6

아이폰 6

이에 대해 애플은 지난 20일 “아이폰6(사진)·6S·SE의 배터리 기능이 저하되면 갑작스럽게 전원이 차단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 구동 속도를 느리게 하는 기능이 iOS 업그레이드에 도입됐다”고 해명했다.

사실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표시가 뜰 때 그 상세한 내용을 따져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말 그대로 업그레이드라는 생각에 ‘확인’을 터치하는데, 거기에 자신의 스마트폰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기능이 들어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배터리 성능 저하를 막기 위해선 iOS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배터리 교환으로 해결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에서 아이폰6S를 갖고 다니는 직장인 사브리나 리는 “특히 기온이 낮아지면 처리속도가 엄청 느려졌는데, 인제 보니 신형 아이폰을 구매하라는 재촉이었다”며 분개했다. 고의로 속도를 늦춘 iOS 때문에 1000달러가 넘는 거액을 지불하고 아이폰X를 구입한 고객들이 가장 먼저 뿔이 나 집단 소송에 가세했다. 미국에서는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에서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배상받는다. 자칫하면 애플이 전 세계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배터리 결함을 감추기 위해 아이폰 성능을 낮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애플전문 매체인 애플인사이더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키튼 하비의 주장이 그렇다.

애플은 지난해 11월 몇몇 아이폰6S와 6S플러스에서 갑자기 다운되는 현상이 발견돼 배터리 교환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실제 배터리를 교환해줬다. 그래서 애플이 구형 아이폰 대부분이 가진 배터리 결함을 감추기 위해 iOS 성능 저하라는 ‘꼼수’를 썼다는 게 하비 측의 주장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구형 모델의 배터리를 교체해주는 것보다 iOS 업그레이드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득일 수밖에 없다.

무리수를 두면 예기치 못한 결과가 뒤따른다. 주요 분석기관들이 내년 아이폰X의 판매 전망을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뉴욕의 리서치 회사 JL워런캐피털은 지난 22일 투자자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애플이 부품 공급사에 대한 주문량을 줄였다. 아이폰X 판매량이 올해 4분기 3000만 대에서 내년 1분기 2500만 대로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폐쇄적인 경영을 해 온 애플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시장은 지켜보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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