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로 성능 저하시킨 애플…집단소송 된서리

중앙일보

입력

 애플이 일부러 구형 아이폰의 속도를 떨어뜨린 사실을 인정한 이후 두 가지 측면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신제품인 아이폰X 구매로 연결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과 배터리 기능 저하를 막기 위한 묘책이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후자는 애플의 입장이다.

배터리 교환 대신 iOS 업그레이드 #아이폰X 구매로 연결시키는 꼼수 #내년 아이폰X 판매전망도 하향세

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 곳곳에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 직전에 벌써 4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집단소송이 이어질 조짐이다.

애플 아이폰X.

애플 아이폰X.

아이폰 출시 10년을 기념해 지난 9월 첫선을 보인 아이폰X가 시중에 나온 뒤부터 문제가 불거지면서 꼼수 논란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선 구형 아이폰의 구동 속도가 슬금슬금 늦어졌다는 성토가 이달 초부터 이어졌다. 미국 뉴스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에서는 “배터리 잔량이 떨어지면 아이폰 속도가 느려지도록 운영체계(iOS)를 변경했다”는 의혹이 속속 제기됐다.

이에 대해 애플은 지난 20일 아이폰6ㆍ6SㆍSE의 배터리 기능이 저하되면 갑작스럽게 전원이 차단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 구동 속도를 느리게 하는 기능이 iOS 업그레이드에 도입됐다고 해명했다.

사실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표시가 뜰 때 그 상세한 내용을 따져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말 그대로 업그레이드라는 생각에 ‘확인’을 터치하는데, 거기에 자신의 스마트폰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기능이 들어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뒤통수 맞았다고 판단하기 쉬운 정황이다. 배터리 성능저하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iOS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배터리 교환으로 해결해야 했다는 지적이 공감대를 사고 있다.

뉴욕에서 아이폰6S를 갖고 다니는 직장인 사브리나 리는 “특히 기온이 낮아지면 처리속도가 엄청 느려졌는데, 인제 보니 신형 아이폰을 구매하라는 재촉이었다”며 분개했다.

고의로 속도를 늦춘 iOS 때문에 1000달러가 넘는 거액을 지불하고 아이폰X를 구입한 고객들이 가장 먼저 뿔이 나 집단 소송에 가세했다. 미국에서는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에서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배상받는다. 자칫하면 애플이 전 세계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배터리 결함을 감추기 위해 아이폰 성능을 낮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애플전문 매체인 애플인사이더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키튼 하비의 주장이 그렇다.

애플은 지난해 11월 몇몇 아이폰6S와 6S플러스에서 갑자기 다운되는 현상이 발견돼 배터리 교환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실제 배터리를 교환해준 선례를 남겼다. 그래서 애플이 구형 아이폰 대부분이 가진 배터리 결함을 감추기 위해 iOS 성능 저하라는 ‘꼼수’를 썼다는 게 하비 측의 주장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구형 모델의 배터리를 교체해주는 것보다 iOS 업그레이드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득일 수밖에 없다.

무리수를 두면 예기치 못한 결과가 뒤따른다. 주요 분석기관들이 내년 아이폰X의 판매 전망을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애플이 자신 있게 출시한 아이폰X가 너무 비싼 가격에 혁신도 부족하다는 평판 때문이다.

뉴욕의 리서치 회사 JL워런캐피털은 지난 22일 투자자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애플이 부품 공급사에 대한 주문량을 줄였다. 아이폰X 판매량이 올해 4분기 3000만 대에서 내년 1분기 2500만 대로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폐쇄적인 기업경영으로 지탄을 받아온 애플이 이번 위기를 또 다른 꼼수로 헤쳐나갈지, 대고객 사과문 발표부터 내놓을지 시장은 지켜보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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