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50년 만에 처음 임단협 연내 타결 ‘펑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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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오는 29일 창사 50주년의 생일을 앞둔 현대자동차가 뒤숭숭하다. 최악의 판매 부진에 시달린 한 해가 겨우 저물고 있지만,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마무리에는 또 실패했다. 조합원들이 잠정 합의안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임단협을 완전히 끝내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연내 타결이 최종 불발되면 현대차 창사 50년 만에 처음으로 해를 넘겨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임금 인상 예년 수준보다 부족” #조합원들, 노사 잠정합의안 부결 #사측 “어려운 경영 속 최선 다해” #29일 창사 기념일 앞두고 뒤숭숭

현대차 노조는 전체 조합원 5만890명을 대상으로 임단협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투표자 4만5008명(투표율 88.4%) 중 2만2611명(50.2%)이 반대표를 던져 잠정 합의안이 부결됐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과반이 찬성해야 잠정 합의안 통과가 가능했지만, 찬성표를 던진 조합원은 48%(2만1707명)를 겨우 넘었다.

현대차 노조 측은 “임금 인상 수준이 예년 수준보다 부족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사는 앞서 19일 진행된 올해 제39차 본교섭에서 ▶기본급 5만8000원 인상 ▶성과급으로 임금의 300% 지급 ▶1인당 격려금 300만원(현금 280만원 및 중소기업 제품 구매 시 20만원 상당의 포인트) 지급 등의 내용을 담은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이는 지난해 현대차 임단협 내용(▶기본급 7만2000원 인상 ▶성과급과 격려금으로 임금의 350%와 330만원 지급 ▶전통시장 상품권 50만원 지급 ▶현대차 주식 10주 지급과 비교하면 인상 폭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회사 사정을 고려해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사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했다”며 “잠정 합의안은 노조에서 대표성을 가진 위원들이 동의한 내용이니만큼 노조 내부적으로 슬기롭게 해결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해에도 노사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8월 1차 잠정 합의안이 부결돼 기본급 인상 폭을 조정한 뒤 10월이 돼서야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이미 12월 중순을 넘긴 시점에 잠정 합의안이 나온 상황이라 연내 타결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1967년 창사 이후 임단협이 해를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그동안 노조에 끌려다녔다는 비판에 직면해 온 현대차로선 연내 협상을 위해 임금 등을 더 양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장현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회사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의 이익만 챙기려 하는 노조에 대해 비판이 많은 건 맞다”며 “하지만 마치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으로 달래고, 이로 인한 피해를 차 가격 상승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떠넘겨 온 사측에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26일 교섭팀 회의를 개최하고 향후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노조 측이 고려 중인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곧장 추가 협상에 돌입해 최대한 연내에 교섭을 마무리하는 방안 ▶파업을 이어나가는 방안 ▶대의원 선거 이후인 내년 2월까지 교섭을 미루고 장기전에 돌입하는 방안 등이다. 그러나 노사가 즉시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는다 해도 조정된 합의안을 내놓아야 하고, 조합원 투표도 다시 거쳐야 해 시일이 꽤 소요될 수밖에 없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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