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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단골들, 내가 안 그만뒀으면···" 제천 목욕탕 전 직원 눈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화재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 건물 근처를 22일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화재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 건물 근처를 22일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내가 그만두지 않았더라면…”여 목욕탕 전 관리직원 눈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2층 여자 목욕탕에서 지난 몇 년간 매점을 운영한 A씨는 23일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화재 소식을 접한 뒤부터 계속 눈물만 나온다”고 했다. 이 목욕탕은 관리자가 따로 없었다. A씨는 매점을 운영하면서 손님 안내와 청소 등을 했다. 목욕탕에 걸려오는 전화도 받는 등 사실상 상주하는 관리 직원처럼 일했다.

그러다 A씨는 화재 3주 전인 지난 1일 일을 그만뒀다. 매출이 계속 줄어드는 데다 청소를 겸하는 것도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그는 취재진에게 “계속 눈물만 난다. 만약 내가 여자 목욕탕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으면 전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희생자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목욕탕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1년 회원권을 산 뒤 매일같이 오는 단골손님들이라 친분이 있었다. 희생자 중에도 아는 사람이 많다”며 울먹였다.

A씨에 따르면 사고 당시 여자 목욕탕에는 화재 소식을 알릴 수 있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A씨는 “지난 1일 내가 일을 그만둔 뒤에는 상주 직원이 없었다. 여탕 안에 있던 사람들은 바깥의 사정을 늦게 알게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층의 이발사가 남자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을 신속히 대피시킨 것처럼, 내가 매점에 있었으면 여자 목욕탕 사람들에게 비상구로 향하는 문의 위치를 빨리 알렸을 텐데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A씨는 수년 동안 비상구를 통해 출퇴근했다고 한다.

2층 비상구로 향하는 문을 밖에서 연 모습. 통로가 목욕용품으로 상당 부분 막혀 있다. [사진 소방방재신문 ]

2층 비상구로 향하는 문을 밖에서 연 모습. 통로가 목욕용품으로 상당 부분 막혀 있다. [사진 소방방재신문 ]

2층에서 발견된 20명의 희생자는 목욕용품으로 거의 가려져 있어 비상구로 향하는 문의 위치를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이 그쪽으로 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비상구로 가는 길은 목욕 바구니들로 꽉 찬 선반들이 상당 부분을 막고 있었다. 성인 한 명이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데 화재 이후 찍힌 사진에는 목욕 바구니들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중앙 출입구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비상구로 향하는 문은 3주 전쯤부터 잠겨 있었지만, 안에서는 열 수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여자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다 화재 초기에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B씨는 “최근 건물 주인이 비상구를 잠가 놓아 밖에선 열 수 없었다. 하지만 안에서는 열 수 있었다”고 23일 말했다. 비상구 문은 안쪽 손잡이 중앙에 달린 돌출 부위를 90도 돌리면 잠금장치가 해제되게 돼 있었다는 것이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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