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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접으라" 연매출 6000만원 사과 농부의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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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귀농하면 지역민들과 커뮤니티는 필수죠"

사진 왼쪽부터 김해영 씨(62)와 정난실 씨(58) 부부 [사진 김해영]

사진 왼쪽부터 김해영 씨(62)와 정난실 씨(58) 부부 [사진 김해영]

김해영(62) 씨는 5년 전인 2012년 은행에서 정년퇴직했다. 한 직장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고 은행 지점장을 끝으로 직장인의 삶을 끝냈다. 재취업이 가능할 수도 있었지만 앞서 퇴직한 선배를 보니 재취업에 성공해도 2~3년 이후에 또다시 직장을 나와야 했다. 그는 직장인의 삶을 늘리는 대신 귀농을 택했다. 언젠가 과수원을 갖고 싶다는 건 그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로컬라이프](6) #귀농 후 사과키우며 연 매출 6000만원 올리는 비법 #땅 선택 신중해야..철저히 준비해야 실패 없어 #인터넷 대신 직거래로 승부..한 번 고객을 충성고객으로 #'무조건 베푼다' 생각하면 지역민과 갈등 줄여

과수원 전경 [사진 김해영]

과수원 전경 [사진 김해영]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지역선택과 땅 구매에 나섰다. 고향이 상주인 그는 고향과 가까운 문경을 귀농지로 택했다. 고향을 오가며 지났던 문경새재의 산새나 풍경이 좋았다. 고향과 멀지 않아 정보를 얻기에도 수월하고 지역민들과 이질감도 적었다. 문경으로 지역을 낙점한 뒤 땅을 보러 다녔고 과수원 땅 6,611.6㎡(2000평) 정도를 샀다. 땅을 산 뒤 과수원 옆에 한옥을 지었다. 59.5㎡(18평) 규모로 부부가 살기에 적당한 크기로 지었다. 이름은 '휴휴정(休休亭)'이라 붙였다.

한옥신축 상량식을 하고 있다. 상량식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을 의미한다. [사진 김해영]

한옥신축 상량식을 하고 있다. 상량식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을 의미한다. [사진 김해영]

한옥집에 눈이 쌓여 있다. [사진 김해영]

한옥집에 눈이 쌓여 있다. [사진 김해영]

작물은 사과로 정했다. 문경이 사과로 유명하기도 했고, 그만큼 공급이 많기도 했지만, 수요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퇴직을 앞두고 틈틈이 문경시에서 운영하는 귀농기술센터 사과대학에서 사과에 대해 공부했다. 작물 재배에 대한 이해부터 판로 개척에 대한 노하우를 익혔다.

김 씨가 적과(열매솎기)를 하고 있는 모습. 나무를 보호하고 좋은 과실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이 달린 과실을 솎아 내야 한다. [사진 김해영]

김 씨가 적과(열매솎기)를 하고 있는 모습. 나무를 보호하고 좋은 과실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이 달린 과실을 솎아 내야 한다. [사진 김해영]

"귀농이나 귀촌을 결심했다면 지역이나 작물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해요." 그는 특히 땅을 선택할 때 신중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귀농·귀촌은 땅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역과 땅 선택에 신중해야 해요. 타인의 토지에 둘러싸여 있는 맹지를 잘못 사 고생하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그는 귀농 첫해부터 본격적인 과수 농사에 들어갔다. '아름다운 고요리 아침사과'로 이름 짓고 농업경영체 등록을 했다. 그는 사과를 즙이나 잼 등의 형태로 가공하기보다 1차 농산물 그대로, 인터넷 판매 대신 직거래하는 방식을 택했다. 농업에서도 6차산업이라거나 블로그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인터넷 판매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오히려 옛날(?) 방식으로 승부를 봤다.

과수원 옆에 한옥을 짓고 이름을 '휴휴정(休休亭)'이라 붙였다. [사진 김해영]

과수원 옆에 한옥을 짓고 이름을 '휴휴정(休休亭)'이라 붙였다. [사진 김해영]

사과 농사 4년 차가 되던 시점부터 연 매출이 6000만원 내외로 올라섰다. 6년 차인 올해도 꾸준히 연 매출 6000만원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한 판매는 안 한다. 판로개척이 고민인 많은 농민이 인터넷으로 판로를 찾지만, 오히려 그는 인터넷 판매에 대한 환상을 접으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키워드 광고나 파워링크 상단에 오르기 위해서는 매월 적잖은 돈을 광고비로 써야 해요. 문경에만도 사과 농가가 1800개에 달하고 전국적으로는 수만 가구에 이르는데 광고비를 무리하게 써가며 인터넷 판매를 통해 수익을 보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의 SNS도 안 했다. SNS를 통해 판매하려면 꾸준함이 생명인데 자신이 없기도 했고요."

대신 고정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다. 처음에는 지인을 중심으로 알음알음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이기 때문에 한 번 사주고 말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고정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인터넷 광고비를 수백만 원 쓰는 것보다 한 번 산 고객을 충성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홍보비를 쓰기로 했다. 품질과 서비스에 만족한 충성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재구매에 나서고 주변에 자연스레 입소문을 냈다. "일회성 고객 보다는 꾸준한 고정 고객 500명을 확보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마당에서 바라 본 석양의 모습 [사진 김해영]

마당에서 바라 본 석양의 모습 [사진 김해영]

지역에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다. 지역민과의 갈등이나 외로움 등을 이유로 역 귀농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는 지역 주민들과 '느슨한 관계'를 유지할 것을 조언했다. 그 역시 같은 해에 문경으로 터를 옮긴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이름하야 '12대문'. 문경으로 귀농·귀촌한 사람들 12가구가 모였다. 김 씨처럼 사과를 키우는 사람부터 오미자를 재배하는 사람, 소를 키우는 사람 등 다양하다. 주기적으로 모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급벙개' 모임도 자주 열린다. 서로 정보도 나누고 교류한다. 특히 지역에서는 개인 단위의 지원보다는 단체에 대한 지원이 커 단체활동을 해야 할 일이 많아 서로 도움이 된다.

한옥 누마루에서 바라본 주흘산의 모습 [사진 김해영]

한옥 누마루에서 바라본 주흘산의 모습 [사진 김해영]

또 지역 사람들과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귀농·귀촌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무조건 베풀어라"라고 말한다. "지역에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대부분입니다. 갑자기 외지인들이 오면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죠. 먼저 마음을 열고 자꾸 베풀다 보면 마음을 열고 진심을 알아봐 줍니다. 지금은 오히려 먹을 것도 나눠주시고, 지역 지원사업 정보가 있으면 먼저 와서 알려주기도 해요. 갈등이랄 게 전혀 없죠."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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