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건강철학 이시형<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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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모진게 목숨이라지만 생명체만큼 상하기 쉬운것도 없다.
병에 해로운 일이라면 말아야한다. 과음이 탓이라면 술을 끊어야한다. 과로라면 쉬어야하고, 기관지염이란 진단이 난 이상 금연은 상식이다.
이걸 못하면 완치는 커녕 악화일로다.
이건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사는 자세의 문제요, 의지의 문제다.
그것 다 끊고 무슨 재미로 살아. 피우며 마시며 즐기다 죽겠다.
하고 싶은것 못할바에야 차라리 죽는게 낫지!
이게 진심이라면, 그리고 죽을때 후회하지 안는다면, 그리고 그게 절제 못하는 자신의 약한 의지를 변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사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이 정도의 배포라면 누가 탓할수도 없다.
마지막 술잔을 들고 죽음을 찬미한 시인도 없진 않다.
『맛이 좋다. 고맙다』이게「브람스」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암으로 시달리고 있었던 임종을 그는 한잔 술을 청해들곤 맛있게 들이킨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짧은 인생이 너무도 애석하다.
우수와 슬픔에 잠긴 길죽한 얼굴을, 그러나 한없이 아름답고 순수한 얼굴이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얼굴이다.
이런 그림을 그리며 화가는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어릴적부터 늑막염·장티푸스·페렴에 시달려야 했던 이 화가가 기다린 것은 무엇일까.
술과 방탕, 거기다 마약까지, 사실 그의 생활은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폐병이 다시 악화되었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 아름다운 아내의 보살핌도 아랑곳 않고 그는 술과 마약으로 거리를 헤맸다.
그러다간 또 미친 사람처럼 그림에 몰두하곤 했다.
건강은 악화일로, 어느 겨울아침, 찬 아틀리에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나이 설흔 여섯이었다.
정말 이 화가는 후회없는 일생이었다고 자부하고 간 것일까.
어차피 죽을걸 하고픈대로 하고 살다간 것일까.
사람이 두 번, 아니 세번만 죽을수 있다면 그렇게 살다 죽는것도 괜찮을것 같다.
불행히 인생은 한번의 기회라는게 문제다.
막가는 인생처럼 아무렇게나 자기를 굴릴순 없는 일이다.
건강도 해야겠고 담배도 즐겨야 겠다.
피우면서 기관지치료가 안될까. 금연하고 치료 할바에야 누가 못해, 의사가 하는일이 뭔데!
그렇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돼있다.
의사라고 생명체의 본질에 도전할 수는 없다.
누구나 여기에 순응해야 한다.
이를 거역하는한 생명까지 지키기란 의사에게도 불가능한 것이다.
생활을 바꿔야한다. 법이란 내 생활 어딘가에 무리가 왔고 허점이 있다는 경계 신호다.
이를 무시했기에 발병했다.
계속하면 더욱 악화된다. 의사가 하는일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설명하는게 고작이다.
약을 쓰고 수술하는 것도 위험요소를 제거하여 손상된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촉진제에 불과할 뿐이다.
생명은 그 자체가 왕성한 회복력을 갖고 있다.
이걸 믿고 투병해야한다.
그러나 과신은 금물이다. 생명의 본질에 항거하는 만용만은 삼가야 한다.
아무리 즐겨하는 일이라도 생명체를 병들게하는 일이라면 삼가야 한다.
이건 아주 간단한 원리다.
투병이란 병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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