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공화정에서 맞는 삼·일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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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나선 「3·1민족항쟁」은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다. 그러나 그 효과와 의미는 자못 크다.
3·1항쟁은 망국 후 최초의 거족적인 항일 독립투쟁이었다. 그것은 금세기 전반기에 세계적으로 풍미했던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제3세계 피압박대중의 민족해방운동의 선구였다. 그 해의 중국 5·4운동이나 인도의 항영독립운동은 3·1운동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3·1운동 후 일제가 무단통치방식을 수정하여 문화정책을 쓴 것도3·1항쟁의 성과다. 일제지배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문화정책은 우리민족의 고통을 완화했고, 식민체제 안에서나마 제한된 자유와 발전의 계기가 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3·1절 69주년을 맞은 오늘 더욱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교훈과 의미를 되살려 뒤늦게나마3· 1정신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 첫째가 국민통합과 민족통일이다. 당시 우리민족은 완전한 하나였다. 반상의 구별이나 지역, 계층의 차별 없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두가 같은 행동으로 나섰다. 거기엔 나라의 안팎과 남녀노소의 구별마저 없었다. 지역대립이나 이념투쟁은 말할 것도 없고 국토분단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둘째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3·1독립선언과 이를 계승한 상해임시정부는 공화주의를 명백히 선언하고 나섰다. 조선왕조가 폐절된지 9년만의 일이었지만 왕정복고는 어느 한곳에서도 거론된바 없다. 국민적 토대를 갖지 못해 국가경영과 국토수호에 실패한 무능한 왕조를 가차없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로부터 70년 가까운 지금까지 우리의 남과 북은 왕조적 정치행태가 지배해왔다.
세째는 자주정신의 확립이다. 3·1항쟁자체가 일제로부터 독립과 자주를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당시의 국제적 강대국 정치의 횡포다.
당시 미국은 「윌슨」민족자결주의의 선언국가임에도 민족자결을 추구한 우리의 지원요청을 냉랭하게 거부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민족의 운명을 외세에 의존할 생각은 추호도 말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3·1항쟁을 계기로 우리 민족대중이 비로소 의식적, 총체적으로 역사의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당초3·1운동의 지도자 그룹에 속했던 구시대의 지도층이 일제에 투항하거나 변절, 배신하여 대중항쟁이 강력히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은 불행한일이다.
이제 우리는 국민의 뜻에 따라 제6공화정을 출범시켰다. 새로운 민주시대를 열어 가는 지금 3·1정신의 뜻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오늘 우리가 새겨야할 3·1정신의 핵심은 민본정치의 실현과 조국통일의 완수다. 이것은 현실적인 당면 과제이면서 잠시도 게을리 할 수 없는 민족의 이상이다. 우리겨레의 이 목표는 국민대중에 기반을 두고 외세 의존 없이 자주적으로 추구돼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되살려야할 진정한 「3·1민족항쟁」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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