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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달려드는 중국 어선 10척에 실탄 200발 경고사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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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 해역에서 불법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들이 해경 경비함정에 돌진할 것처럼 위협해 해경이 대응 차원에서 실탄 200여 발의 경고 사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한·중 정상회담(14일)의 성과를 문재인 정부가 적극 홍보하는 와중에 한국 해경과 중국 어선의 충돌이 발생해 주목된다. 특히 해경은 사건 발생 24시간이 넘도록 총격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아 청와대 눈치 보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고 방송 통한 퇴거 요구 무시 #함정 향해 돌진 위협하자 사격 #중국 어선 측 인명 피해는 없어 #해경, 24시간 넘게 총격 사실 쉬쉬 #“정당한 집행 청와대 눈치보기” 지적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20일 “지난 19일 오전 9시15분부터 오후 2시43분 사이 전남 신안군 가거도 북서쪽 53해리(약 98.1㎞)에서 무허가 중국 어선들에 경고 사격해 퇴거 조치했다”고 밝혔다. 해당 지점은 한·중 어업협정선에서 한국 쪽 1해리(약 1.8㎞) 해상으로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어선은 조업할 수 없다.

19일 전남 신안군 가거도 해상에서 중국 어선들이 해경의 퇴거 경고 방송에도 불구하고 경비함정으로 돌진하자 경고 사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전남 신안군 가거도 해상에서 중국 어선들이 해경의 퇴거 경고 방송에도 불구하고 경비함정으로 돌진하자 경고 사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경에 따르면 경고 사격이 이뤄지기 약 9시간 전인 이날 0시26분 무렵 60~80t급 중국 어선 44척이 조업할 수 없는 해상에 떠 있었다. 목포해양경찰서 1508함 등이 경고 방송을 통해 퇴거를 요구했지만 중국 어선들은 이를 무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어선 6척이 갑자기 해경 경비함정으로 돌진할 것처럼 위협했다. 이들 무허가 중국 어선은 선명이 가려져 있었고 해경이 배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는 쇠창살·철망 등 등선 방해장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해경은 매뉴얼대로 소화포를 시작으로 비살상무기인 스펀지탄 48발, 개인화기 K-2 소총 21발, 공용화기인 M-60 기관총 180발을 해경 함정에 위협을 가하는 중국 어선 10여 척에 차례로 발사했다. 사상자는 없었다고 해경은 전했다.

해양경비법 제17조(무기의 사용)는 ‘선박 등과 범인이 선체나 무기·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여 경비세력을 공격하거나 공격하려는 경우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 함장의 판단과 결정으로 경고 사격을 실시해 퇴거 조치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중국 어선이 해경 고속단정을 고의로 들이받은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10월 단속에 저항할 경우 함포나 기관총 등을 쏠 수 있도록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전까지는 중국 어선과 선원들의 거친 저항에도 해경은 비살상무기나 권총 등으로 대응했다.

지난해 11월 1일 해경은 인천시 소청도 인근 해상에서 중국 어선을 나포하던 중 우리 함정을 위협한 다른 어선에 M-60 700발을 처음 발사해 강력 대응의지를 보여 줬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무력을 사용한 한국 측의 폭력적인 법 집행행위에 강하게 불만을 표시한다”고 유감 입장을 밝혔다.

이후에도 해경의 적극적인 무기 사용은 계속됐다. 지난해 11월 12일 소청도 해역을 비롯해 모두 20여 차례에 걸쳐 3000여 발을 발사해 불법행위에 강력 대응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4일 가거도 인근 해상에서 M-60 150발을 발사한 사례가 있다. 앞서 2월엔 가거도 해상에서 해경이 M-60 900발을 발사했다.

해경은 이번 실탄 사용 사실을 만 하루가 넘게 공개하지 않다가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뒤늦게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청와대가 나서 적극 홍보하던 시점에 사건이 발생하자 해경이 청와대 눈치를 보는 바람에 중국 어선의 불법행위에 대해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고도 사실을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인명) 피해가 없어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외부를 의식해 보도자료 배포를 늦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노호래 군산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해경 단속요원의 목숨이 걸린 문제인 만큼 중국 어선의 불법행위에는 원칙대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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