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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비정규직 자회사 반대하더니 … 사장 맡은 한국노총 간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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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또 노동계 인사가 공기업 사장으로 내정됐다. 이번엔 공기업의 비정규직 자회사다. 특히 사장 내정자가 한국노총 현직 간부다. 노동계는 그동안 공공부문 직접 고용을 통한 정규직화를 주장해왔다. 인력 도급과 파견을 적폐로 보고 철폐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노동계가 비정규직 전문 인력업체의 경영을 맡아 도급과 파견업무를 관장하는 책임자가 되는 셈이다.

현장에서 #청소·특수경비 담당 비정규직 흡수 #이달 31일 KAC 공항서비스 설립 #노동계는 줄곧 직접 고용 요구해 #내정된 인사 기업체 근무 경력 없어

20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총, 한국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한국공항공사는 이달 31일 가칭 ‘KAC(한국공항공사) 공항서비스㈜’를 설립한다. 이번 주 안에 회사 설립등기를 마무리한다. KAC 공항서비스는 김포공항을 비롯해 한국공항공사가 관할하는 전국 14개 공항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4117명의 인력을 직원으로 흡수할 방침이다. 공항 내 특수경비, 청소 등을 맡아온 인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한 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태풍에 휘말린 한국공항공사가 직접 고용 대신 자회사 설립으로 해결책을 강구하는 셈이다.

한국공항공사는 이달 초 임기 3년의 KAC공항서비스 사장 공모절차를 마무리했다. 내정자는 한국노총 이 모 실장이다. 이 실장은 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거의 없다. 한국노총에 사무직원으로 입사해 줄곧 한국노총 사무총국에서 일해왔다. 한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재직할 때 비서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노동계는 “협력업체 소속인 비정규직을 공사가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해왔다. 전국 공항에서 수시로 시위를 했다. 지난달 23일엔 공공연대 노조원들이 김해공항 국제선 게이트 앞에서 ‘비정규직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 반대’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는 현재의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도급과 파견)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이었다. “자회사가 설립되면 기존 협력업체처럼 퇴직한 공사 직원의 낙하산 왕국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이런 와중에 현직 노총 간부는 비정규직 자회사 사장 공모에 지원했다. “앞에선 투쟁하고, 뒤에선 자리를 챙긴 것 아니냐” “노동계 낙하산”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관계자는 “노조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해치는 행위”라며 “노동계의 정당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자리 욕심을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철도를 멈추고 전기를 끊어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겠다”며 총파업을 지휘했던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20일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폴리텍대 교수와 야당, 학계가 반대했지만 정부는 밀어붙였다.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주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됐다. 지난 정부에서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 서명했다가 파기하고 민주당과 정책연대를 선택한 인물이다.

투쟁을 외치고, 을의 위치에 놓인 노동계를 보듬겠다고 했던 게 노동계다. 그런 노동계가 자신의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 팽개치고, 갑의 자리를 꿰차려 몰두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전문성이나 경영 효율성은 따지지 않고 노동계 인사를 공공부문 대표로 선임하고 있다. 이게 공공부문 적폐청산과 정상화인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맞는지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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