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에만 그친「금융자율화」심상복<경제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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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주총회는 지난 한해 동안의 영업실적을 결산해 잘잘못을 따지고 앞으로 회사살림을 꾸려 나갈 임원도 뽑는 매우 중요하고도 뜻깊은 자리다.
그러나 지난 26, 27일 이틀간 치러진 시중은행 주 총은 타율 속에 굳어졌던 구 태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한갓 요식 절차로 끝난 느낌이어서 아쉬움을 금할 길 없었다.
엄연히 민간은행인데도 주총 날짜조차 정부 당국의 내 락을 받아 정하는가 하면, 은행장이 바뀐 곳에서는 이미 1주일 전쯤부터 소문난대로 추 인하기 위한 박수행사로 끝난 현실은 금융자율화의 구호가 아직도 얼마나 요원한 것인가를 말해 준다.
개회 선언과 함께 은행장이 20∼30분간에 걸쳐 영업실적을 보고했고 이어 부 의된 안건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발언권을 얻어 일어난 주주들은 대부분 은행장이하 임원들의 노고만 칭찬하는가 하면 배당금의 다소는 별 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에서부터 『행장 님은 미남이라서 경영능력도 뛰어나다』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장면도 연출했다.
가끔씩은 부실채권이 왜 많이 생겼느냐, 배당률이 왜 낮느냐는 비판적인 지적도 나왔지만 전반적으론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느낌이다.
진정 그 은행을 아끼는 주주라면 친 창보다 잘못을 따끔하게 꼬집어 주는 것이 필요한데 예정된 발언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아채는 그들의 모습은 60,70년대의 은행 주 총 모습 그대로였다.
은행마다 똑같은 발언자들의 똑같은 발언내용. 은행 주 총은 한마디로「총회 꾼」들의 놀이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형편이었다.
금융자율화를 내세우면서 여전히 간섭하는 정부의 입김, 그리고 옛날 총회 꾼 들의 작태를 못 벗어난 주주총회를 보면서 아직도 금융자율화는 먼 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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