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포럼

경제실정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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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부는 올해 연간 5% 성장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다수 국내외 예측기관들도 비슷한 수준의 성장전망을 내놨으니 크게 무리하달 것도 없다. 수출이 그럭저럭 버텨주고 내수(內需)가 조금만 살아나면 그 정도 성장을 달성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떨어진 환율의 하락폭이 예상보다 커지면서 적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출의 증가세가 한순간에 꺾이고 만 것이다. 연초에 반짝했던 내수의 회복세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기업의 투자는 지지부진하고, 가계의 소비는 오히려 감소세로 돌아섰다. 장밋빛 일색이던 올해 경기전망에 돌연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치권은 온통 지방선거와 과거사 문제, 정치권의 재편에 정신이 팔려 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의 발걸음도 덩달아 바빠졌다. 지난 3년간 죽을 쒔던 경제가 올해 어쨌든 살아난다니 이제는 정치에 올인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인 듯하다. 이 판에 속이 꺼멓게 타는 것은 한 부총리뿐이다. 경제회생을 장담해 놓고 이제 와서 무르기도 어렵게 됐다. 대통령이든 국무총리든 붙잡고, 환율이 이렇고 국제유가가 저래서 올해 경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질 것 같다고 설명하자니 구차하기 짝이 없다. 구구하게 이런저런 이유를 대봐야 예측 잘못에 대한 변명처럼 들릴 터이니 차라리 말을 않는 게 낫겠다.

더 딱한 것은 한 부총리에게는 별다른 정책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 스스로가 취임 초부터 단기부양책은 쓰지 않겠다고 단언한 터여서 약발이 잘 듣는 건설경기 회생책은 어차피 말도 꺼낼 수도 없다. 이 바람에 정부의 각종 부동산 대책의 융단폭격을 당한 건설경기는 일어설 기력조차 없는 상태다. 올해 경기회복을 전제로 인상해온 금리를 다시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금리를 내린다고 경기에 보탬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환율을 올려 수출을 부추기는 것인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외환시장에 돈을 퍼부어 환율방어에 나서는 방법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급기야 재정경제부는 외환규제를 풀어 환율 하락을 막아보겠다고 나섰다. 외국에 부동산도 사고, 해외 펀드에 투자도 해서 가급적 달러를 많이 빼내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효과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세금을 깎자거나 빚을 얻어서라도 재정지출을 늘리자고 할 수도 없다.

앞으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은 온통 한 부총리에게 몰릴 게 뻔하다. 한 부총리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전임 이헌재 부총리가 청와대 386 인사들과의 불협화음 끝에 낙마한 것을 보고, 철저하게 코드를 맞춘 죄밖에 없다. 다만 그 결과 부동산 대책 이외에는 아무런 정책 없이 경기회복을 기원하는 신세가 된 것뿐이다. 경제가 대외여건의 변화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것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경제정책 운용의 권한도 없고 소신도 없는 경제수장의 비애다. 그러나 경제 실적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경제부총리의 손발을 묶고 운신의 폭을 좁힌 것이 이 정부의 운영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은 선거에서 경제실정의 책임을 부총리가 아니라 정권에 대해 묻는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