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해외칼럼

부시 대통령 '불만의 겨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미국이 곤경에 빠진 곳은 이라크뿐만이 아니다. 이란은 유럽.러시아.미국 등의 회유와 위협에도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중동 평화 정착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혼수 상태에 빠지고, 무장단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최근 중동을 순방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집트 등으로부터 "미국이 선거를 통해 승리한 하마스를 비난하면서 민주주의를 설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들어야 했다.

부시 대통령은 국내에서도 고전 중이다. 집권 2기 의제인 사회보장제도 개혁과 조세제도 개편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다. 설상가상으로 국토안보부가 지난해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늑장 대응해 주민 피해가 커졌다는 내용의 하원 특별위 보고서가 지난달 14일 공개됐다.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도청은 민주당과의 대립을 심화시킨 것은 물론 공화당 내 온건파와 백악관의 사이마저 갈라놓았다. 아브라모프 로비 스캔들은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K 스트리트(워싱턴DC 내의 로비스트 밀집 거리)'와 부정한 거래를 했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남겼다. 집권당인 공화당이 정치적 타격은 더 클 것이다.

올해 11월에는 중간선거가 치러진다. 역대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이 패배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화당은 안절부절못한다. 부시 대통령은 요즘 경제가 유례없이 잘 굴러가고 있음에도 별 신뢰를 얻지 못한다. 심지어 딕 체니 부통령이 얼마 전 텍사스 목장에서 사냥 중 실수로 동료를 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한 충성스러운 공화당원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해 "2008년 대선을 위해 체니가 물러날 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시 정부의 거듭된 중동 정책 실패는 민주당에는 기회다.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종종 민주당에 대고 흔들었던 "테러에 너무 관대하다"는 카드를 이제는 민주당이 백악관에 들이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명백히 보여주는 예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기업 두바이 포트월드 사건이다. 미 재무부는 두바이 포트월드가 뉴욕.뉴저지.뉴올리언스 등 미 주요 항만 6개의 운영권을 보유한 영국계 회사를 인수하는 것을 승인했다. 뉴욕.뉴저지의 민주당 의원들은 발 빠르게 이 거래를 백지화하는 입법안을 약속했다. 부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한 발 물러섰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미국이 외국인 혐오와 자국민 보호주의로 치닫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까지 자유무역과 도하 라운드의 가장 확고한 지지자였다. 그는 상.하원에서 중국을 겨냥한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했을 때 반발했다.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밀어붙이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과거 민주당에 대해 "테러 위협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다져왔다. 민주당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국가안보 이슈에 대해 부시 대통령보다 더 '오른쪽' 주장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늘이 준 기회로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런 가혹한 상황에서 지지자들을 묶어낼 수 있을지가 이번 선거의 관건이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브루킹스 연구소장

정리=김선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