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신조로 국가에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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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 시대가 무엇보다 요구하는 것은 국민화합이며 민주화의 길을 넓히는 것인 만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조정해 시대의 큰 흐름으로 엮어 나가겠다.
이현재 국무총리 내정 자는 11일 상오 삼청동 대통령 당선자 집무실에서 노태우 대통령당선자와의 상견례를 겸한 30분간의 요담을 마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노 당선자께서 오늘아침 늦게 별안간 전화를 주셔서 당황했다』면서도 학계의 존경받는 교수답게. 중후한 체취를 풍기면서 소감과 직무구상의 일단을 피력했다.
-우선 소감부터 말씀해주시지요.
『어떤 기대가 축적되면 소감이 나오는데 오늘 늦은 아침에 노 당선자로부터 새 정권에서 같이 일하자는 전화를 받아 교원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어 당황했습니다. 국가와 차기 대통령을 위해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없다고 답변했지요. 그러나 세상일이란 게 사양을 해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점으로 귀착되는가 봅니다.
총리자리는 종합적 능력을 고루 갖춘 사람 이어야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대학교원으로 평생 지내와 굉장히 두려움이 앞섭니다. 단지 살아온 방식이 매사를 성실·진지하게 다룬다는 신조였기 때문에 이 정신에 따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차기 대통령을 보좌하겠습니다.
시대상황이 이제 국민 욕구가 일시에 분출되고 있으며 분출된 욕구를 그냥 발산시킬 것이 아니라 이를 소화, 정리해 국력신장으로 응축시켜야 합니다. 총리자리가 정치적 지위인데 나는 정치에 문외한이지만 진지한 자세로 임하면 국민·정치인·언론도 이해해 줄 것으로 이해합니다.』
-통보를 언제 받았습니까. 『오늘 아침 늦게 전화를 주셨는데 나 같은 직능을 가진 사람이 생각 할 수 없는 일이라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나 간곡한 부탁이 있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앞으로 조각을 어떤 식으로 할 구상이십니까.
『처음 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눌 여지가 있었겠습니까. 그 어른의 뜻을 묻고 통찰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상견례들 한 뒤 30여 분간 요담을 나눴는데….
『손을 잡고 성실하게 일해 나가자는 일반적인 말씀만 있었습니다.』
- 서울대 총장시절 학원문제를 직접 다뤘는데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작정입니까.
『어쩌다 보니 총장 등 보직도 많이 맡고 교수·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학원문제는「대책」이 있기보다 신임 받는 정부, 국민을 위한 시책이 확립되고 베풀어지면 그 속에서 자연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
- 경제학 교수출신으로 시급한 물가문제를 어떻게 다룰 생각이신 지요.
『강단에 서 있을 때의 입장과 실제 입장이 다를 수 있으므로 실체를 알아본 뒤 문제를 풀어나가야겠지요.』
- 노 당선자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입니까.
『노 차기 대통령이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 서울대 총장으로 서울대체육관 건립과 관련해 예산이 없어 부탁을 드리러 갔었지요 마침 노 차기대통령이 서울대 학부형 (재헌군·경영학과) 이었습니다. 도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처음에 난색을 표명해 학부형들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서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 호소했었지요. 결국 건축비 50억 원 중 25억 원을 지원 받았 습니다. 또 노 차기대통령이 민정당 대표위원 시절에 학원문제 때문에 여러 총장들과 함께 뵌 적이 있습니다.』
-민화 위 위원으로 교섭 받는 적은 없습니까.
『간접적으로 받았는데 평생 훈장기분으로 살아왔고 실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 사양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
- 각계의 민주화 욕구를 어떻게 조정할 생각입니까.
『정부 각 부처의 기능을 통해 실천적인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구호를 외치기보다 실천해 나가는 게 중요하지요.』 이 총리 내 정자는 『총장 퇴진 때의 모습이 발탁이유의 하나가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총장 같은 고위직은 진퇴를 언제든지 분명히 해야 되는 게 아닙니까』면서 『나는 가만히 그만 둔 것뿐인데 사회적으로 내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주고 센세이셔널 하게 한 것은 언론이 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53 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 공사교관·부산대 교수 생활을 한 후 61 년부터 지금까지 모교에서 전공인 재정금융 학을 강의, 외곬 경제학자로 일관했다.
40세 때 서울대 학생처장을 시발로 79 년 사회과학대 학장, 80년 서울대 부총장, 83년 서울대 총장의 보직을 거치면서 온화하고 차분하나 적극적 성격으로 학사업무를 처리, 비교적 선망을 받았다.
골프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며 노래시킬까봐 사은회 참석도 꺼린다는 청빈한 선비며 노모(85)에 대한 효행은 널리 알려져 있다.
테니스와 등산이 취미.
부인 김요한 여사(52)와 3남 1녀.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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