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자살기도 한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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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KAL기 폭파에 직접 가담한 김현희의 수사에는 인터폴을 통해 세계10개국 이상의 수사기관이 협조했으며 범행에 대한 김의 자백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이루어졌다고 국가안전기획부의 남녀수사 전담요원들이 밝혔다.
김현희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비화는 10일 발매된 일본잡지 문예춘추 3월호에 수사관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게재됐다. 다음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김이 소변을 참으며 자살을 기도했던 것은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다. 김이 바레인에서 서울에 도착한날 자살방지용 테이프를 입에서 떼었다. 김은 처음에 한국어를 아는체 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무리였다. 8일째에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수갑을 채우지 않은채 63빌딩식당에 가거나 한일은 없다. 김을 자동차에 태워 40∼50분간 남산이나 한강 또는 시내 번화가를 돌아다녔으며 차에서 내린 적은 없다.
-슈퍼마킷 등을 보고 개심했다던데….
▲김은 유럽에서 서민들의 생활수준을 보고 감동했다. 그런데 한국이 유럽과 모습이 비슷하고 활기가 차있는 것을 보고 새로운 나라구나 하고 생각한 것 같다. 김이 한국을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 이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알수 있다.
김의 아버지는 앙골라의 외교관으로 보도됐지만 무역대표부원이기 때문에 외교관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비료가 부족해서 인분을 사용하고 있으며 각 가정에서 20kg씩 인분을 말려서 공출하는게 의무다. 김도 장녀로 5인 가족의 것을 만들어내는 일을 했었다.
-김현희의 가족걱정은.
▲북한에 있는 자신의 가족이 숙청되거나 처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김은 말했다. 김의 마음이 혼란해지지 않도록 우리도 조심했다. TV채널도 마음대로 선택토록 했다. 처음에는 놀라와했다. 물론 자신의 기자회견도 TV를 통해 보았다.
북한에서 망명해온 사람들의 좌담회를 보고 자신의 친구가 있으며 자신의 회견이 도움이 됐다는 것을 확인, 안심하는 것 같았다. 김은 가요곡이나 여자가수의 의상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형은 아니다.
TV의 심야 프로그램을 보는 정도이며 정치토론에 적지 않은 흥미를 보이고 있다. 새롭고 전혀 알지 못하는 사상이나 생각의 다양함 때문이다. 역사관계프로그램도 좋아하고 있다. 김은 훈민정음을 누가 창제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여성수사관이 본 김에 대한 인상은.
▲전형적인 평양출신으로 솔직한 성격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게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말하고 또 질문한다. 한참 수사중에 울거나 화를 내거나했다. 연애경험은 없는 듯 하다. 북한은 남녀교제가 금지되어 있다.
김은 대학 1학년때 2, 3학년의 남학생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외국어 연습을 할때는 팝뮤직을 기억해 방에서 때때로 콧노래를 부르거나 했다고 한다. 1월 기자회견 때 김이 화장했다는 말이 있으나 세상에 피의자에게 화장을 시키는 나라가 있는가.
-기자회견 사전 연습이 있었는가.
▲없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김이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다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처음에 김은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그러나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다음 범행을 방지할 수 있다는데 김은 납득했다. 회견처음부분에서 김이 얼마동안 침묵을 지켜 우리들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우리들의 일부 상사는 김에게 기자회견 연습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으나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반대했다.
만약 김이 표변해서 한국을 공격했다면 이것은 북한에 대한 충성심을 천하에 보여주는 것으로 북한의 범행을 더욱 증명해주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김의 음성감정을 일본에 의뢰한 적은 없다.
-탑승객의 보안점검이 철저한 중동에서 김 등이 가지고 있던 라디오를 돌려달라고 항의를 했다는데….
▲김현희의 말에 따르면 이라크의 여성담당관이 폭탄장치가 된 라디오 건전지를 빼버리자 김이 이를 주워 자살한 김승일에게 건네주었으며 김승일은 이를 다시 라디오에 넣어 볼륨을 높이고서 『자 들어보시오』라고 항의, 건전지를 넣은채 라디오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한다.
김현희는 김정일에게 유괴되어 탈출한 영화감독 신상옥씨의 일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영화 돌아오지 않는 밀사』는 재미는 있었지만 『사상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작년에 북한에서 망명한 김만철씨에 대해서도 『남으로 도망간 몹쓸 녀석』이라는 정도로 들어 알고 있었다. <동경=최철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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