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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라 불러야"…"역사가 평가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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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화위 국민 화합분과위는 9일 증언을 직접 듣지 못한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의 의견서를 접수하고 광주 사태에 대한 최종 건의안 마련을 위한 토론에 들어갔다.
다음은 이씨의 의견서 및 위원들의 토론 요지.
▲이 당시 계엄사령관 의견서=5월 17일 24시를 기해 전국으로 비상계엄이 확대 선포되고 5월 18일 새벽 3시를 기해 전국 31개 대학과 1백36개 보안 목표에 계엄군을 배치시켰다.
이 조치로 전국의 학생 소요는 중지되고 평온을 되찾게 되었으나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이날 상오 9시 전남대 정문에서 학생 2백 여명이 계엄군에 심한 투석전을 전개함으로써 광주 사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광주 사태 발생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겠으나 계엄군의 과잉 진압이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광주 사태가 점차 확대, 악화됨으로써 계엄사는 2개의 공수 특전여단을 추가 증강했고 20, 21일 이틀에 걸쳐 경기도 ○○지역에 위치한 사단 소속 병력을 증파 했다.
이 사단 병력은 어느 때 어떤 곳을 막론하고 계엄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주한 연합 군사령부의 지휘하에서 떠난 병력으로 서울 근교에 집결시켜 두었던 병력이다.
공수 특전여단병력은 연합군 사령부의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병력이다. 따라서 주한연합군 사령관이 광주 사태 진압을 목적으로 병력을 지원했다는 일부 오해는 불식돼야 한다.
21일에는 과열 상태에서 야기되는 쌍방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시내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전환 배치토록 승인하고 하오 7시 30분 방송을 통해 이성과 자제로 슬기롭게 극복해줄 것을 전 국민에게 당부하는 동시 부득이한 경우에는 자위권을 행사한다고 경고했다.
자위권 행사는 위수령,
군인 복무규율, 경찰관 직무 집행 법에 근거한 것으로 군인 및 경찰관이 불가피하게 무기를 사용할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자위권 발동 지시가 없었다해도 필요할 경우 당연히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사태 초기에 적절히 이 자위권을 행사했다면 그 많은 병기 및 탄약을 탈취 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고있다.
22일 계엄훈령 11호로 자위권 발동 지시를 하달하고 예하 부대의 이해를 촉구한 바 있다.
광주 사태는 쌍방이 심한 흥분상태 아래에서 서로 얽히고 설킨 혼란 중에 발생한 일이라 누구의 소행이며 그 상황이 자위권 행사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를 가려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은 그렇다해도 응어리 맺힌 광주 시민의 마음을 풀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점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어 위원들의 광주 사태 치유 방안에 대한 토론이 진행)
▲박찬봉 위원(5·18 유족회 회장) 신상발언=전계량 씨는 당시 군인의 신분으로 유족 회 일에도 뒤늦게 참석한 사람이다. 참고인이라면 시위 주동자나 군중이나 당시 관에 있던 사람 등이어야 하는데 그는 증언할 자격이 없다. 또 전씨의 이야기는 광주 사람 전체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유족들은 까치도 까치집을 짓듯 몸을 은신하게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광주 사태는 인간적·윤리적으로 해결돼야한다.
▲박옥재 위원(5·18 부상자회 회장)=광주에서 7년간 너무 많이 논의되다보니 어느 정도의 공약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되는 치유 방안을 제시하겠다.
광주의 비극은 분명히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 책임질 사람이 없다면 원천적인 해결이 안되거나 해결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우선 책임자를 색출해 의법 조치해야 한다.
아울러△광주 사태를 민주의거로 규정△오는 5월 18일 노 대통령이 각료·야당 당수·각계 저명인사를 대동하여 망월 동 묘지에 속죄·참회의 뜻으로 참배△도청을 5·18 기념관으로 지정△5·18 위령탑은 광주 시민의 손으로 건립△유가족·부상자·구속 자· 면직 자 등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보상△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현금 보상 등이 있어야한다.
▲이강훈 위원(독립운동가)=광주 사태를「의거」라고 표현하는 것은 역사적 판단이라는 관점에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 개인적으로는「4·19 의거」라는 규정도 모순이라고 생각하고「4·19 항쟁」이라 해야 옳다. 나라가 망했을 때 행동한 것과 나라가 있을 때 봉기한 것은 의미가 다르다.
또 이등박문을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행동을 의거라 하듯이 개개인의 거사는 의거라 할 수 있지만 광주 사태처럼 집단행동을 의거라 규정하기는 힘들다. 광주 사태는 동기는 옳지만 의거가 되기 위해선 시간이 경과한 후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한다. 따라서 대신「광주 시민항쟁」으로 규정해야한다. 박 위원의 주장 중 책임자 문책·피해자 보상 등에 관해선 같은 의견이다.
▲박옥재 위원=일본인들과 싸운 것은 의거이고 국내의 독재 세력과 싸운 것은 의거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자유 민주체제 하에서의 독재는 식민 정권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적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거사했다 해서 의거가 아니란 주장이 가능한가.
4·19의거라는 표현이 잘못됐다는 주장은 모순이다. 4·19의거와 5·18은 다른 점이 없고 오히려 5·18이 인권 침해·고문·살인 등으로 얼룩져 있던 군부 독재에 대항했다는 점에서 더 평가되어야 한다. 5·18은 4·19보다 시민들이 더 잔악하게 찔리고 깨지는 등 피해를 당했다.
▲이병용 위원(전 대한변협 회장)=광주 사태와 4·19는 그 순수한 동기에 있어 차이가 없으나 우리는 정치 역학적인 고려로 구별해 판단해야 한다. 4·19는 군과 시민이 손을 잡았고 당시 집권층을 무너뜨렸다. 광주 사태도 당시 집권층을 쓰러뜨렸더라면 벌써 의거로 규정됐을 것이고 책임자를 처벌했을 것이다.
지금 광주 사태를 의거로 하자면 발포·과잉 진압의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5공화국을 악으로 규정, 부정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태의 두 당사자들에 대해 모두 정당성을 인정해야한다. 김대중씨도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얘기는 안 했다.
그가『용서하자』고 표현한데는 양쪽 모두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의거로 하자」는 건의를 한다면 차기 대통령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인데 이를 알면서도 건의하는 것은 좋지 않다.
진상 조사 위를 구성하면 그 문제에 시간을 빼앗기게 되고 당장 시급한 유족 및 부상자들에 대한 조치는 지연된다. 또한 9월 국가적 대사인 올림픽을 앞두고 진상규명에 매달린다면 우리의 국제적 체면 등을 고려할 때 매우 곤란한 일이다.
▲서영훈 위원(전 흥사단 이사장)=그 동안의 진술 착취·자료 수집 등을 놓고 볼 때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이런 쟁점들에 대한 연구·토론도 없이「의거」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성급하다.
개인적으로는 광주 사태도 한국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명예회복·보상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대해 동의한다. 중요한 것은 그 해결을「용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용서는『논어』의 입장에서 볼 때 서로 나누는 것이고 따라서 양측이 서로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서정주 위원(시인)=우리의 임무는 무엇을 처리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 당선자에게 건의하는 것이다. 의거다, 아니다를 논의하는 것은 끝도 없고 실질적인 화합 방책이 아니다. 유가족·부상자 등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과 구체적인 위령 사업 등 현실적 효력을 나타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자. 의거인지, 민주항쟁인지는 두고두고 미래 역사가 재평가할 것이다.
▲이충환 위원(구 신민당 최고위원)=광주 사태는 정부와 광주 시민의 견해 차이에서 발생했다고 본다. 광주 시민은 민주 쟁취를 위한 투쟁을 했는데 정부는 이를 반 정부차원을 넘어 국가 변란 적 상대로 판단한 차이가 있다. 당시 경비계엄 정도만 해도 충분한 상황이었는데 비상 계엄 선포를 했다. 아울러 과잉 진압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보여진다. 과잉 진압 자체만으로도 정부는 국민, 특히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 성명이 있어야한다. 해결책은 명분과 실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하며 근본 태도는 서로 호양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교황「요한·바오로」2세가 광주를 방문하여 말한「관용·이해·화해」의 근본정신 바로 그것밖에 없다. 국회의 국정 감사권은 입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국정 감사 운운하다 보면 보상이 늦어진다. 광주 시민이 미흡해 하거나 불만스러워 하더라도 국민이 지지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면 광주 시민의 대다수는 이를 환영하게 될 것이다. 전부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는 만큼 최대공약수를 찾자.
▲고정훈 위원(천도교 교령)=이 불행한 비극을 다루는데 있어 우리가 중요시 해야하는 것은 진실을 밝혀 응어리를 푸는 것이다.
의거 여부는 후세에 있어 역사적 판단의 문제다. 동학란은 94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평가됐다.
▲조향녹 위원 (전 한신대 학장) =광주사태 사망자 수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안타깝다.
치유 방법 중 광주시민의 명예 회복과 관련한 의거여부는 우리가 규정할 처지에 있지 않다. 잠정적으로라도「광주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보상 문제에 관한 한 국가가 인색해서는 안 된다.
또 현직 또는 차기 대통령이 심심한 유감을 표시하고 다시는 이 같은 불행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서약을 해야한다.
▲김재순 위원(샘터 발행인)=광주 사태는「한풀이」차원에서 해결돼야 한다. 만약「원풀이」를 하려 한다면 국가의 파멸이 눈앞에 보인다. 8일 진술한 전계량씨는「원풀이」하려고 하는 사람인 바 이 사람의 의견을 따를 수 없다.
책임자를 색출해 의법 처벌한다든지 하면 우리 국군은 어떻게 되나. 그들 역시 우리 자식이다. 화해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진실을 캔다는 것은 상처를 쑤시는 결과밖에 안 된다.
큰 의미에서의 명예회복은 됐다고 본다.
전 정권이 물러나고 국민선출에 의한 새로운 의미의 새 정권이 들어선다는 것은 광주 사태를 비롯한 많은 민주회복 투쟁의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다른 각도의 명예회복과 위령 사업 등은 우리가 적극 논의하자.
▲박옥재 위원=노 당선자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책임자 색출과 의법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다. 5공화국을 승계하는 노 정권의 한계를 모르는 바 아니다. 개념정립도 하지 않고 돈만 주자는 데는 절대 반대다.

<허남진·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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