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8일 오후 국회 … 한국 정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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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8일 오후 2시25분.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이해찬 총리와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언쟁을 벌였다. 홍 의원이 '윤상림 사건'과 이 총리의 관계를 집요하게 추궁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다음은 문답.

▶홍 의원="희대의 브로커로부터 정치 헌금을 받고 골프를 쳤습니다. 국민들이 의혹을 갖고 있으니 후원금 액수를 공개하시죠."

▶이 총리="의혹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시는데….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3년 전에 다른 모임에서 알게 돼 두세 번 골프를 쳤고, 나에게 후원금 몇 번 낸 게 전부입니다."

▶홍 의원="한번이 아니고 몇 번씩이나 받았군요. 서너 차례 됩니까. 액수는 도대체 얼마나 되나요."

▶이 총리="내가 후원금을 받을 당시의 법은 준 사람의 의사에 반해 액수를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홍 의원="실권 있는 총리가 왜 공개하지도 못할 돈을 받았습니까."

▶이 총리="공개 못 할 돈이 아닙니다. 당시의 법이 그랬어요. 여러분이 의혹을 부풀릴 만큼 부도덕한 것이 없었어요. 상한선보다 훨씬 적은 금액입니다.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소액입니다."

▶홍 의원="선거관리를 총괄하는 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모두 열린우리당 당원입니다. 선거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겠습니까."(이 무렵부터 두 사람의 얼굴에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이 깔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때론 떨렸으며 경멸도 담긴 듯했다. 의석도 시끄러워졌다.)

▶이 총리="나와 천정배 장관은 한번도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고 선거를 잘 치른 사람들입니다. 홍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적이 있는 걸로 아는데…."

▶홍 의원=(흥분해서 "총리""총리"하고 두 번 불렀다.)"전 총리처럼 브로커와 놀아나지 않았습니다. 브로커한테 정치 자금 받지 않았습니다."

▶이 총리="(얼굴 근육이 떨렸다. 목소리를 높이며)인신모욕하지 마십시오. 누가 브로커와 놀아났다는 겁니까.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브로커와 놀아난 적 없어요. 사실을 갖고 얘기하세요."

▶홍 의원="(상기된 얼굴로) 사실 갖고 얘기했습니다. 놀아난 것 맞지 않습니까. 골프 친 일 있고 서너 차례 정치 헌금 받지 않았습니까."

▶이 총리="정책 질의하세요. 난 놀아난 적 없습니다. 홍 의원은 의원직 박탈 당한 적 있어도 난 그동안 다섯 번의 선거에서 선거법 위반한 적 없어요."(이때 이 총리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다고 홍 의원이 나중에 주장함)

▶홍 의원="대한민국의 2인자가 (윤상림씨와)그런 사이인데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이 총리="염려 마세요. 법률적.도덕적으로 의혹 받을 일 없습니다."

▶홍 의원="총리가 사임하는 게 도리 아닙니까."

▶이 총리="(나를 사임시켜)정치적으로 뭘 얻으려 하는지 몰라도…사의표명할 일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 받을 일 하나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는 내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너희나 잘해라. 집어치워. 정책질문을 해. 야 내려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질문하게 놔둬"라고 맞고함을 질렀다. 소란의 연속이었다.

두 사람의 일문일답이 끝난 뒤 김원기 국회의장은 "상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조금 전의 질문과 답변은 정상적 궤도를 이탈한 것입니다"라고 주의를 줬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꺼번에 본회의장을 빠져 나와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대정부 질문을 보이콧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물타기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반론이 우세해 회의장에 다시 들어왔다.

?이군현.박재완 의원과 2라운드=회의장에 복귀한 뒤엔 이군현.박재완 의원이 차례로 이 총리와 맞붙었다.

▶이군현 의원="윤상림씨와 그 정도 관련돼 있으면 놀아난 게 아니면 뭡니까."

▶이 총리="비속하게 말하지 마세요. 한 점도 도덕적으로 흠이 없습니다."

▶이 의원="한 나라의 총리라면 통이 크게 말해야 합니다. 어떻게 총리가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의 말에 눈을 부라리고 말마다 '쫑쫑쫑' 토를 답니까."

▶이 총리="나도 의원이면서 총리입니다. 나의 명예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명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이 총리는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과의 일문일답에선 "내가 의정활동을 18년째 하는데 대정부 질문이 지금처럼 난잡한 적이 없습니다"라며 언성을 높였다.

총리와 야당 의원 3명의 '언어 육박전'이 끝난 시간이 오후 6시30분. 2006년 대한민국의 정치시계는 그렇게 흘러 갔다.

서승욱 기자

◆ 이 총리와 윤상림 사건=이 총리는 총리 취임 전에 브로커 윤상림씨와 골프를 치고 의원 후원금을 받은 바 있다.

◆ 홍 의원 의원직 박탈=96년 총선 때 선거운동원들에게 자금을 뿌린 혐의로 99년 3월 의원직을 잃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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