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84년 해외공작 실습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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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KAL기 폭파범 김현희는 81년7월부터 83년3월까지 1년8개월동안 일본인 여자와 합숙하며 하루 17시간30분씩 꽉 짜인 일과표에 따라 기계처럼 일본인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김은 일본인 행세를 위한 「하치야·마유미」(봉곡진유미)명의의 일본여권과 「김옥화」란 가명의 북한여권 등 2개의 여권으로 자살한 김승일과 함께 부녀로 행세하며 84년에는 유럽과 홍콩·마카오등 동남아, 85∼87년에는 중공·광주·마카오등을 돌며 해외공작실습과 중국어교육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안전기획부가 밝힌 김현희의 일본경찰관 면담내용은 다음과 같다.
84년7월 해외적응 실습여행 및 김승일의 서울침투공작 지원을 위해 처음으로 부녀공작조로 편성돼 해외여행 노정과 일본인으로 위장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받을 당시 중앙당 조사부 사진사가 초대소를 방문, 여권제작용 사진 2장을 찍어갔다. 그중 한장은 김일성 배지를 달고 찍었다.
84년8월 담당 장지도원이 가명인 김옥화(생년월일 60년1월27일) 명의로 된 북한여권과 「하치야·마유미」명의의 위조된 일본여권을 주면서 여권과 검역증서에 서명토록 했다.
장지도원은 신분보장을 위해 △아버지「하치야·신이치」는 대정운수 취체역 부사장이며 어머니는 「다마에」(옥혜)로 7∼8년전 사망했고 △본적은 「강산현 강산시부원1006」, 주소는 「동경도 삽곡구혜비수10∼4∼6」이나 이사온지 얼마 안되고 △전에 살던 곳은 판교구로 이곳에서 소학교·중학교를 거쳐 청산여자단기학원 가정과(2년제)를 졸업했고 4살 위인「기미에」(군혜)란 언니가 있는데 오사카로 시집간 것으로 행세토록 하고 암기시켰다.
이밖에 최부부장은 출발2일전 송별연에서 「하치야·마유미」는 김현희와 나이가 비슷한 일본여자로 고교졸업 후 영어강습소를 다녀 영어회화를 좀하고 미국에도 한번 다녀온 건강한 여자라고 말했으며 「마유미」여권에는 3개의 출입국스탬프(84·8·25 나리타출국, 방콕입국, 8·26 방콕 출국)가 이미 찍혀 있으니 잘 외어두도록 지시한 후 여권을 장지도원에게 반납했다.
84년8월15일 평양 순안 비행장을 출발할 때 김옥화 명의의 북한여권을 받아 모스크바∼부다페스트∼빈으로 간후 8월22일께 빈역에서 동행한 장지도원에게 북한여권을 반납하고 「하치야·마유미」의 위조 일본여권을 받았다.
그후 8월28일부터 9월20일까지 23일간 코펜하겐(6박)·프랑크푸르트(5박)·취리히 및 제네바(8박)·파리(4박)를 거쳐 홍콩을 경유, 마카오에 도착했다.
마카오에서 7박한 후 9월28일 장지도원 및 김승일과 합류, 북경경유 평양까지는 다시 김옥화 명의의 북한여권을 사용했다.
당시 김승일은 파리에서 서울로 직행, 홍콩을 거쳐 마카오에서 합류했다.
김현희는 85년7월부터 87년1월사이 중국어 현지교육과 자본주의사회 적응훈련을 위해 동료 여자공작원과 함께 김옥화 명의의 북한여권을 갖고 중공 광주·마카오-등에서 생활했으며 검문에 대비, 「마유미」여권을 휴대했으나 검문은 당하지 않았다.
당시 김은 체류기간 경과에 대비, 위조 일본여권에 찍기 위해 홍콩·마카오의 입·출극 위저 스탬프 4개도 갖고 있다.
KAL기 폭파임무 수행을 위해 87년11월12일 김승일과 평양을 떠날 때도 김현희는 김옥화 명의의 북한여권을 사용, 모스크바∼부다페스트∼빈으로 간후 11월18일 빈 도착 즉시 북한여권을 반납하고 「하치야·마유미」명의의 위조일본여권을 받아 바레인 입국 때까지 사용했다.
김승일은 김현희에게 어렸을 때 일본에서 일어를 배웠고 10년전 구마모토에서 2∼3년간 활동한 사실이 있다는 말을 했으며 김의 일어는 노인들이 하는 어투로 천천히 하나 능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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