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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먼저 간 아우가 형에게 주는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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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바보는 경험을 통해서만 배운다.”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22) #1년전 세상 뜬 아우가 잠든 납골당 찾아 추모 #다른 사람이 섭섭해 할 일 하지 말자고 다짐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종종 하시던 말씀이다. 거듭 실수를 저지르는 제자들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맞는 이야기라 여긴다. 한데 그다지 멍청한 편이 아닌데도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는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 종종 생긴다.

한 살 터울인 아우가 세상을 떠났을 때가 그중 하나다. 구순이 된 부모께는 알리지도 못한 채 동생을 보냈다. 영안실에서, 화장장에서, 그리고 납골당에서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왈칵 눈물이 솟곤 했다.

납골당(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납골당(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 성격이 무디달까 냉정하달까 이른바 ‘참사 뉴스’를 봐도 덤덤했던 터다. 해마다 받는 동창회 명부에서 빈칸이 하나둘 늘어가는 걸 보면서도 남의 일로 치부했었다. 안타까운 일을 들어도 그러려니 하면서 어쩌면 공감 능력이 크게 모자란 것 아닐까,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처지다. 한데 친인을 앞세우는 일은 아주 달랐다.

동생은 술을 좋아해 결국 술병으로 돌연사한 것이었다. 평소에도 조마조마했기에 막내에게서 동생의 운명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도 설핏 ‘올 게 왔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더랬다. 허겁지겁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달려가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으니 의연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아우와는 그렇게 우애가 깊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성격상으로는 영 안 맞았다. 철없을 때는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했고, 커서도 모진 소리를 퍼붓기 일쑤였다. 어렸을 적엔 사고도 많이 쳤고 일가를 이루고서도,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납득 못 할 일을 많이 저질러 따뜻한 격려나 다정스런 한마디보다는 쓴소리, 싫은 소리를 할 때가 많았다. 오죽하면 ‘형제니까 어울리지…’하는 이야기를 했을까.

맏이 도리 다했다 생각했지만 보내고 나니 후회

그래도 피붙이라고 무작정 살갑게 대해주지는 못했을망정, 적어도 철이 든 후로는 맏이로서 도리는 했다. 은행 빚을 얻어 가게 열 돈을 대주기도 하고, 조카 하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맡아 대학까지 보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형' 스틸컷. [중앙포토]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형' 스틸컷. [중앙포토]

하지만 막상 다시는 못 본다 생각하니 떠오르는 것은 아우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 아쉬운 일뿐이었다. ‘아프다 할 때 한 번이라도 더 볼걸’ ‘되는 일이 없다며 술만 찾을 때 집에 불러 밥이라도 챙겨 먹일걸’ ‘데리고 있었으면 이 지경까지는…’ 온통 그런 회한이 밀어닥치니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지난 1일은 그 아우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 맞는 생일이었다. 행여 마음의 짐을 덜까 싶어 아우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을 매주 찾던 참에 그날은 막내와 함께 약간의 제수를 준비해 먼저 간 피붙이를 조촐하게 기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빌었다. 피붙이를 앞세우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다짐했다. 다른 이가 섭섭해할 일은 가능한 한 하지 말자고.

이게, 글이며, 그림, 악기 연주 심지어는 싸움까지 공부 빼고는 재주가 빼어났던 아우가 겪어봐야 아는 ‘바보 형’에게 주는 선물인지 모르겠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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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칼럼니스트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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