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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공수사권 없애면 북 대남 공작 고속도로 깔아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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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승규(左), 김만복(右)

김승규(左), 김만복(右)

국가정보원이 대공수사권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한 국정원법 개정안을 내놓자 후폭풍이 거세다. 안보 공백 우려와 함께 “대안도 없이 폐지하면 간첩은 누가 잡느냐”는 반발이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정보기관 전문가 등 반대론 확산 #“해외 방첩망 없으면 간첩 수사 반쪽” #한국당 “좌파 정권이 국정원 무력화”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 수장이었던 김승규 전 국정원장은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공수사권 폐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국정원의 수사권 필요성은) 국민이 다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국정원 출신 인사들이 반대하는 요지는 대공수사 역량이 하루아침에 제로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국정원 제1차장 출신의 전옥현 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국정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대공수사인데 수사권을 넘기는 건 국정원 존재 이유를 없애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정원 국장급 간부 출신의 채성준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겸임교수도 “북한의 대남 침투가 해외를 경유할 때가 많다”며 “국정원의 해외방첩망도 대공수사권이 있을 때 강해지는 만큼 수사권을 폐지하면 타 기관의 간첩 수사는 반쪽짜리가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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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김만복 전 국정원장(노무현 정부)은 “남북 분단 특수성 때문에 비밀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가져야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 등 과거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국민 신뢰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수사권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보기관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보와 수사의 분리가 갈수록 고도화하는 현대 정보전 추세와 맞지 않다는 우려가 크다. 유동열 국가정보학회 수석부회장은 “북한 정찰총국·통일전선부 등 대남 공작 기구는 70년 가까이 담당 인력이 바뀌지 않고 그 분야만 맡아 귀신 수준”이라며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없앤다면 북한 대남 공작의 고속도로를 깔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30일 자유한국당 지도부 회의 때 참석자들 앞에 내걸린 팻말도 기존 ‘무능정권 심판’에서 이날부터 ‘국정원법 개정 국가안보 포기’로 바뀌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좌파 정권이 국정원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것 아닌가. 간첩 수사는 포기하겠다는 것인지, 이것이 문재인 정권의 북한에 대한 기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말이 있듯이 간첩과 테러범은 누가 잡는가”라며 “국내 정치 개입과 특수활동비 전용이 문제인데 엉뚱하게도 대북수사권을 스스로 폐기하겠다는 것을 대책이라고 내놨다. 진단과 처방이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황교안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서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대공수사를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 경솔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조만간 여당 의원 발의 형태로 국회에 국정원법 개정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우선 해당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원회 통과부터 험난하다. 법안이 상정되기 위해선 정보위 법안소위 위원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한데 소위 위원장이 개혁안에 반대하는 이완영 한국당 의원이다. 소위를 넘기더라도 정보위와 본회의 직전 관문인 법제사법위 위원장이 역시 한국당 의원이다. 본회의에서 표 대결로 갈 경우에도 더불어민주당(121석)과 한국당(116석) 의석수 모두 의결 정족수인 과반이 안 되는 만큼 국민의당(40석)이 열쇠를 쥐게 된다.

김형구·안효성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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