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조명|문학작품 쏟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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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들어「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하는 물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관계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어 주목을 모으고 있다.
최근 출간된 이 같은 계열의 작품들로는 80년 대작가 유순하의 첫 창작집『내가 그린 내 얼굴 하나』, 시인이자 작가인·박우수의 시집『쑥 고개』,소설집『철조망 속 휘파람』등이 있으며 65년 반공법혐의로 유명한 필화사건을 겪었던 남정현의『분지』도 80년만에 재 출간
됐다.
지난해 출간된 김상렬의 장편『묽은 달』, 이원규의 장편『훈장과 굴레』,이상문의 장편 『황색인』, 윤재철의 시집『아메리카 들소』, 장정일의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등도 각각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응답하고있다.
이 같은 최근의 한미관계 문학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의 이른바 기지촌문학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작품 속의 한미관계는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하게된 6·25전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분단의 상처」를 환기하는 중요한 모티프로 쓰여왔다.
송병수의『쑈리킴』,전광용의『꺼삐딴 리』, 서기량의『왕릉과 주둔군』, 남정현의『분지』, 신상웅의『분노의 일기』, 이문구의『해벽』, 천승세의『황구의 비명』, 조해일의『아메리카』, 김명인의『동두천』등으로 70년대까지 이어져온 이들 문학작품은 그러나 대부분「약소민족」과「강대국」이라는 기본구도 속에서 민족적 열패감과 체념적 분노 쪽에만 치중, 현실파악의 한계를 노정시켜 왔다. 또한 작품배경 역시 대부분 미군 위안부촌이나 미군부대 주변마을에 머물러「기지촌문학」이라는 도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특히 최근 들어 분단극복을 지향하는「민족문학」이 다루는 한미관계 문학들은 단순한 기지촌 문학을 탈피, 미국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인식이 역사·정치·사회·문화적으로 정교해지고 있다.
지난해 문단의 주목을 받는 조정내의『태백산맥』,이산하의『한라산』등 미군정치하를 소 재로 한 문학이 미국과 한반도 분단의 함수관계를 깊이 있게 파헤친 대표적인 예라면 황석영의『무기의 그늘』, 이상문의『황색인』, 이원규의『훈장과 굴레』,그리고 미국을「광기의 달빛」으로 상징한 김상렬의『붉은 달』등은 월남전을 소재로 한국과 미국의 정치·역사적 관계를 제3세계적 시각으로 탐색한 작품들이다.
이와 함께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미국의「보이지 않는 거대한 지배」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문학작업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멀리는 60년대 시인 김수영·신동엽 등에서 시작된 이 같은 움직임은「미국문화의 찌꺼기에 익숙해진 공범자의식」을 표출시킨 강석경의『낮과 꿈』,『밤과 요람』등의 소실에서도 확인되며, 박노해·문병난·문정대·양성우등의「반외세 문학」과 장정일의『햄버거에 대한 명상』,윤재철의『아메리카 들소』등 타락한 서구문명 및 그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스스로의 의식을 질타하는「풍자문학」등으로 나타나고있다.
특히 최근 출간된 유순하의『내가 그린 내 얼굴 하나』는 한국에 있는 미국 다국적기업의 노사분규를 소재로「부끄러운 우리들의 참모습」을 형상화, 한미관계의 소설적 소재를 넓힌 문제작으로 평가되고있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에 대해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70년대까지만 해도「무조건적인 우방」으로 강요됐던 대미 인식이「외세극복」이라는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탈 금기화 돼 문학속의 미국비판이 객관화되고 있다』며『그러나 아직까지 작가들의 역사적 안목이 사회과학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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