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반도선 4년간 1700건 테러, 이번엔 IS 깃발 들고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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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현지시간) 폭탄·총기 테러가 벌어진 이집트 시나이반도 이슬람사원 바깥에 희생자들의 신발이 뒤엉켜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5일(현지시간) 폭탄·총기 테러가 벌어진 이집트 시나이반도 이슬람사원 바깥에 희생자들의 신발이 뒤엉켜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한 모스크에서 발생한 테러로 최소 305명이 사망한 가운데 이집트 정부가 테러범을 대상으로 공습을 퍼붓는 등 강력한 대처에 나섰다. 이날 이집트군은 성명을 통해 “우리 공군은 테러범이 이용한 차량을 추적해 파괴했으며, 범인들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25일 TV 연설에서 “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전력을 다해 우리 순교자들의 복수를 하고 지역 안정을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집트 이슬람사원 최소 305명 사망 #이슬람 분파 수피교도 큰 피해 #무장단체 활동 급증한 시나이반도 #카이로와 멀어 정부 통제력 약해

이집트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금요일 안식일(24일)을 맞아 수백 명의 신도가 예배를 보고 있던 시나이반도 비르 알아베드 지역의 알라우다 이슬람 사원에 약 30명의 무장 괴한들이 차량을 타고 나타났다. 괴한들의 움직임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만큼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은 모스크 정문과 12개 창문에 자리를 잡고 시민들이 밀집한 건물 내부에 폭탄을 던진 뒤 도망쳐 나오는 시민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시민들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모스크 주변에 주차된 차량에 불을 질러 놓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였다. 이 사건으로 어린이 27명을 포함해 최소 305명이 사망하고 120여 명이 다쳤다.

이 공격의 배후를 주장하는 세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이집트 당국은 테러범들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고 밝혔다. 시나이 반도 일대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IS 시나이지부는 그동안 이집트군이나 이집트의 기독교 분파인 콥트 교도들을 테러 표적으로 삼아왔으나 모스크를 공격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카타르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번 테러 대상이 된 모스크는 이슬람교의 한 분파인 수피교도가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수피교는 알라와 무함마드만을 인정하는 정통 이슬람교와 달리 뛰어난 성직자들도 성인으로 추앙한다. 때문에 IS 등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로부터 ‘우상숭배를 하는 이단’이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이집트 정부는 이번 테러에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지만 외신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 수년간 IS 시나이지부를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왔음에도 이 지역의 테러 공격을 뿌리뽑지 못했다.

시나이반도는 수도 카이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정부 통제력이 약한 지역이다. 면적은 6만㎢로 한국의 60% 수준이지만 인구는 고작 140만 명에 불과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땅이 많고, 사막과 산악지대가 넓게 형성돼 있어 무장단체의 게릴라 활동을 막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수차례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집트 정부는 시나이 지역을 군사작전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을 뿐 이 지역의 높은 빈곤율과 실업율, 낮은 교육수준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환경 탓에 시나이반도는 무기 밀매조직 등 각종 불법 단체의 온상이 돼 왔다. 특히 지난 2013년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세속주의 성향인 엘시시의 쿠데타로 축출되자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의 반정부 활동이 급격히 늘었다.

미국 워싱턴 소재 씽크탱크인 타흐리르중동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7월 무르시가 축출된 이래 시나이반도에선 1700여 건의 테러가 발생했고 군·경 병력만 약 1000명이 사망했다. 2014년 2월엔 IS 시나이지부의 전신인 극단주의 단체 알마크디스가 한국 관광객들이 탄 버스에 폭탄 테러를 가해 한국인 3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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