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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물건 잡으러 뛰던 '도어 버스터'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헤럴드스퀘어에 위치한 메이시스 백화점 앞. 추수감사절 세일로 불리는 블랙프라이데이 오픈 시간인 오후 5시가 가까워져 오면서 쇼핑객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정문 앞에 100명 정도의 군집을 이뤘다. 마침내 5시 정각에 문이 열리자 기다리던 행렬은 매장 안으로 속속 들어찼다.

23일 오후5시(현지시간) 뉴욕 헤럴드스퀘어 메이시스 백화점이 문을 열자 선물을 사려는 쇼핑객들로 금새 빼곡해졌다. [AFP=연합뉴스]

23일 오후5시(현지시간) 뉴욕 헤럴드스퀘어 메이시스 백화점이 문을 열자 선물을 사려는 쇼핑객들로 금새 빼곡해졌다. [AFP=연합뉴스]

사전에 점 찍어둔 물건을 먼저 잡기 위해 달리기를 불사하는 '도어 버스터(Door Buster)'가 몇명 있었지만 예전만큼 진풍경을 빚지는 못했다. 쇼핑하러 나온 에린 톰스(28ㆍ뉴욕 거주)는 “10달러, 20달러씩 깎아주는 화장품 매장과 40% 세일을 해주는 부츠 코너를 노리고 있다”면서 “문을 열자마자 매장으로 돌진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미 블랙프라이데이 현장르포 #온라인쇼핑몰서 11월내내 세일 #사이버 먼데이 특수도 줄어들어 #소매점 임시직원 고용도 최저로

같은 날 오후 11시 뉴저지주 클로스터의 타깃 매장. 오후 6시에 문을 열고 자정 너머까지 영업을 공고했지만, 가전제품 매장에만 사람들이 조금 몰려있을 뿐 나머지는 평소보다 한가해 보였다.

23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의 타깃매장. 손님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23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의 타깃매장. 손님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전 텐트를 치고 줄을 서던 진풍경은 이제 미국 중부의 베스트바이 매장 앞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다. 그것도 대형 TV를 200∼300달러대에 구입하려는 알뜰 쇼핑족들이 대부분이다.

미 텍사스주 메스키트의 베스트바이 매장 앞에 TV 등을 싸게 구입하려는 쇼핑객들이 23일 오후 6시(현지시간)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EPA]

미 텍사스주 메스키트의 베스트바이 매장 앞에 TV 등을 싸게 구입하려는 쇼핑객들이 23일 오후 6시(현지시간)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EPA]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쇼핑몰이 득세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볼 수 있던 블랙프라이데이 특수가 블랙 노벰버 특수로 점점 희석되는 추세가 올해 들어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가 가까워져 와도 분위기가 살지 않는 ‘블랙프라이데이 크립(Creep)’ 현상이 굳건해지고 있다. 대부분이 추수감사절에 가족끼리 칠면조로 저녁식사를 한 뒤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쇼핑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추수감사절 이후 첫 번째 월요일인 ‘사이버 먼데이’ 특수까지 식혀버리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인 어도비 시스템스는 추수감사절 오후 5시 현재의 스타트폰 거래액이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15억 달러라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스마트폰 거래액은 매년 15%씩 증가하는 추세다. 삼성페이, 애플페이, 페이팔, 아마존페이 등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발전하면서 더욱 촉발됐다. 자신의 PC를 켤 필요없도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충분히 모든 쇼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캣 푸르타도는 현재 삼성 갤럭시 S7을 통해 쇼핑을 하는 이유에 대해 “내 전화로 거래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3일(현지시간) 미 켄터키주 보우링그린의 베스트바이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쇼핑객들이 오픈과 함께 밀려들어오고 있다.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미 켄터키주 보우링그린의 베스트바이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쇼핑객들이 오픈과 함께 밀려들어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현상의 최대 수혜자는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현재 온라인 쇼핑객이 쓰는 1달러 가운데 42센트를 가져가고 있다고 시장조사기관인 슬라이스인텔리전스가 밝혔다.
전미소매연맹(NRF)과 PI&A가 지난달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 온라인 쇼핑으로 갈음하겠다는 사람들이 59%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오프라인 쇼퍼의 수를 넘어섰다.

이런 ‘아마존 효과’로 인해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연휴 시즌에 채용하는 임시직원의 수까지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NRF에 따르면 지난해 임시직원으로 고용된 수가 57만5000명에 달했는데, 올해는 50만∼55만명으로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우선 월마트부터 임시직 고용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대신 수천 명의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활용키로 했다. 메이시스 백화점은 판매실적이 계속 떨어지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4% 감소한 8만명의 임시직원을 고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간) 캔자스주 오버랜드파크의 베스트바이 매장이 문을 열자 쇼핑객들이 앞다퉈 들어가 대형 TV를 사들고 계산대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캔자스주 오버랜드파크의 베스트바이 매장이 문을 열자 쇼핑객들이 앞다퉈 들어가 대형 TV를 사들고 계산대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형소매 체인 가운데 타깃이 거의 유일하게 임시직원 고용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7만명에서 올해는 10만명 정도 고용할 계획이다. 직원들에게 매장에서의 쇼핑경험을 키워주고, 치열한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내 오기 위함이다. 퀸즈의 타깃매장에서 임시직원으로 일하는 멜라니 콜론은 “나 역시 온라인 쇼핑을 많이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 또한 중요하다”면서 “고객이 쇼핑의 목적을 얘기하고 내 의견을 원하기 때문인데, 이런 경험은 온라인에서는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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