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엄마가 그랬듯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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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복의 희고 빳빳한 칼라만큼이나 내 자존심도 밝고 빳빳했었다. 그 자존심이 여지없이 구겨진 것은 졸업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원서를 쓴 마지막 대학의 합격자 명단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내 이름만 쏙 빠진…. 나는 지나쳤던 욕심과 높기만한 대학 문턱을 뼛속 깊이 느끼며 매일 밤 베갯잇을 적셨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대학 가면 무엇을 할지 조목조목 종이에 적고 있을 때, 재수라는 두 글자뿐인 내 종이는 창백하게 변해버려 떨리는 내 두 손에 가차없이 구겨져 버렸다.

졸업식 전날 밤. 나는 내 두 눈 가득히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엄마에게 오지 말라며 간절하게 애원했다. 엄마에게 등을 보이는 순간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차라리 지금 이 눈물로 서러움을 다 씻어버리자며 울고 또 울었다.

결국 내 졸업식 날은 친구들의 화려한 꽃다발의 그림자에 가려진 채 26년이 흘렀다. 과자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모양의 과자처럼 나와 내 딸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때의 내 모습과 너무 같은 딸 역시 나처럼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내게 다가왔다. 이미 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미리 얘기해 주고 있었다.

"엄마, 제발 부탁이야. 졸업식 날 오지마. 나 안 그래도 힘든데 엄마 오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안경 위로 떨어진 그 눈물이 타임머신인 양 내 머릿속을 과거의 그 시간으로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눈물로 젖은 딸의 소매를 잡고 오래전 내 모습을 다시 그려봤다.

졸업식 날, 나는 친정 엄마와 어린 조카까지 함께 가장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딸의 학교를 찾아갔다. 놀란 토끼눈으로 날 바라보는 딸의 두 눈 위로 수정 같은 눈물이 맺혔다 흩어졌다.

'이것도 추억이야. 엄마도 겪어본 아픔이야. 그것이 얼마나 아픈 상처로 남을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널 사랑하기에.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내 딸아.'

이자영 (43.주부.경기도 부천시 상동)

◆ 3월 3일자 소재는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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