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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20년 되는 날에 ‘골드뱅크 사건’ 김석기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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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속에서 ‘국내 1호 상장 인터넷 업체’ 골드뱅크의 주가를 조작해 수백억 원대 시세차익을 남긴, 이른바 ‘골드뱅크 주가 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 김석기(60) 전 중앙종금 대표가 21일 구속됐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1997년 11월 21일로부터 꼭 20년 되는 날에 벌어진 일이다. 2000년 해외로 도피해 17년간 도피 생활을 한 김씨는 영국에서 체류하다 지난해 12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부인은 배우 윤석화(61)씨다.

김석기(59) 전 중앙종금 대표. [중앙포토]

김석기(59) 전 중앙종금 대표. [중앙포토]

서울남부지법 김병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1일 밤에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과 도망 염려가 있다”며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단장 문성인 부장검사)은 김씨를 불구속 상태로 수사해오다 지난 17일 증권거래법 및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 중앙종금 대표 17년 만에 수감 #김 전 대표, 혐의 일부만 인정 중

◇골드뱅크 주가 조작 사건은

1998년 골드뱅크는 ‘인터넷으로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마케팅 기법을 도입해 급속도로 떠올랐다. 이듬해 3월 국내 한 증권기업에 일하던 김씨는 코스닥 기업 골드뱅크가 발행한 해외 전환사채(CB)를 말레이시아의 역외 펀드 라시가 인수한 것처럼 꾸몄다. 다음 달인 4월에도 말레이시아 역외 펀드 드렉슬러가 골드뱅크가 발행한 해외 전환사채를 산 것처럼 허위 공시했다. 두 차례에 걸쳐 해외자본 유치에 성공했다고 꾸민 금액은 700만 달러였다. 그는 서울대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서 아시아법인 영업본부장으로 일하다 국내로 돌아온 인물로, 증권가에선 ‘투자의 귀재’로 통했다.

김씨의 허위 공시는 금세 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98년 10월 6200원이던 골드뱅크 주가는 이듬해 7월 31만2000원으로 50배가량 폭등했다. 김씨는 주가가 폭등하자 말레이시아 펀드가 샀던 것처럼 꾸민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매각했고, 당시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겼다. 규모는 660억 원대로 추정되지만, 검찰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부당 이익 규모를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불상의 이익’으로 표기했다.

◇검찰ㆍ금감원의 부실 수사 의혹

골드뱅크 주가가 50배나 뛰자,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대부분 조사는 의혹만 남긴 채 흐지부지됐다. 당초 금감원은 주가 폭등 전인 98년 10월 증권업협회로부터 골드뱅크의 주가가 수상하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통보받았지만, 추가 수사 없이 넘겼다. 또 99년 2월부터 수사를 재개했지만, 골드뱅크의 회계를 맡고 있던 모 회계법인의 윤모씨를 금감원 조사국에 계약직으로 입사시켰다. 금감원의 골드뱅크 주가조작 조사는 4월 무혐의로 결론 났다. 금감원 조사국에 계약직으로 들어갔던 윤모씨는 7월 골드뱅크 계열사인 동부창업투자 사장으로 옮겨졌으며, 또 다른 조사국 직원 민모씨도 골드뱅크로 이직했다.

이에 대해 당시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은 10월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이 올 2월부터 한 달간 골드뱅크의 이상 주식급등에 대해 조사, 14건의 위반행위를 적발했으나 대량보유 신고 의무를 위반한 13명을 검찰에 통보하는 것으로 조사를 마무리했다”며 축소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감사장에선 주가조작과 감독 당국의 봐주기 의혹 외에도, ‘CB 헐값 발행’ ‘정치자금 조성’ 의혹도 제기됐다.

1999년 10월 11일자 중앙경제 1면. 대한민국 인터넷 기업 1호 골드뱅크의 주가가 1년만에 50배 폭등한 데 대한 주가조작 의혹을 다루고 있다.

1999년 10월 11일자 중앙경제 1면. 대한민국 인터넷 기업 1호 골드뱅크의 주가가 1년만에 50배 폭등한 데 대한 주가조작 의혹을 다루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주가 조작으로 시세차익을 남기고 중앙종금 대표로 선임된 후에야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김씨는 구속이 합당한지를 다시 판단해달라는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통해 김씨를 석방했다. 김씨는 곧바로 해외로 출국했고 수사는 종결됐다. 그는 한동안 홍콩에 머물다 영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도피 이후 상황

골드뱅크 주가가 폭등한 배경에는 골드뱅크가 99년 7월부터 온라인에서 주식 거래가 가능한 사이버증권사를 가동하겠다고 공시한 요인도 있었다. 그러나 사이버증권사는 설립되지 않았고, 3개월만인 10월 주가는 7만 원대로 폭락했다. 이로 인해 일반투자자 1만여명이 큰 피해를 입었다. 외환위기로 허리띠를 졸라매던 애꿎은 서민들이 사기 대상이 됐다.

600억 원대 시세차익 혐의와 관련해선 2002년 최모(59) 전 골드뱅크 상무가 검찰에 구속됐다. 골드뱅크 대표였던 김모(50)씨는 2000년 4월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퇴진했다. 그는 김씨와 함께 주가 조작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지만, 같은 해 8월 주가 조작 혐의가 아닌, 회사 자금을 유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구속됐다. 그는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도피 17년 만에 구속된 김씨는 현재 법무법인 광장 등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로 꾸려진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혐의의 일부만 인정하고 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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