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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공무원 10명 지진 났는데…유럽서 뭐했나 살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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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수도 빈 중심부에 있는 슈테판 성당 주변 게른트너 거리에서 어릿광대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어릿광대 뒤로 오스트리아 출신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를 모티브로 한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중앙포토]

오스트리아 수도 빈 중심부에 있는 슈테판 성당 주변 게른트너 거리에서 어릿광대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어릿광대 뒤로 오스트리아 출신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를 모티브로 한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중앙포토]

포항 지진 하루 전 8박 9일간 유럽 여행을 떠난 포항시 공무원 10여 명이 지진 발생 엿새 뒤인 21일 귀국해 지진 복구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한 뒤 귀국했다. 이를 두고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진 상황 전해 들어 #이후 모차르트 생가 도시 찾고, 프라하도 들려 #포항시 "죄송하다" "징계 여부는 지진 수습 후에" #귀국한 10여명 지진복구 현장에 투입돼 일하는 중

22일 포항 흥해읍의 한 주민은 "충북도의원들이 청주 물난리 중에 유럽에 갔다가 비행기 표가 없어서 바로 못 온다고 한 것 같은 그런 비행기 표 변명이다. 한두 명이라도 먼저 들어올 수 있지 않았냐"고 지적했다.

빈 중심부의 구 시가지. [중앙포토]

빈 중심부의 구 시가지. [중앙포토]

도대체 무슨 목적을 가진 어떤 여행이었을까. 어떤 일정을 가진 유럽행일까. 사연은 규모 5.4 지진이 발생하기 하루 전인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항시는 매년 공무원노동조합과 함께 '노사문화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노조에 소속된 공무원들을 선발해 해외 견문을 넓혀주겠다며 만든 일종의 외유성 출장. 올해는 인사팀장과 10여 명의 6~7급 시청 소속 공무원들로 팀이 꾸려졌다. 1인당 350만원 정도의 시 예산이 배정됐다. 여행지는 유럽의 오스트리아와 체코였다.

3분기 내국인의 카드 해외 사용 실적이 분기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지난 7월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의 모습. [중앙포토]

3분기 내국인의 카드 해외 사용 실적이 분기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지난 7월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의 모습. [중앙포토]

이렇게 10여 명은 인천공항을 통해 유럽으로 떠났다. 문제는 16일 불거졌다.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해 있던 이들에게 시청 직원의 카카오톡 한 통이 도착했다. 지진이 발생했고, 귀국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포항시 한 간부공무원은 "15일 지진 발생일엔 미처 정신이 없어 연락을 못 했고, 16일 오후에 카카오톡으로 지진 사실을 처음 알리고 귀국 이야기를 꺼냈다"고 말했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중세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프라하 전경.  [사진제공=자유투어]

천혜의 자연경관과 중세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프라하 전경. [사진제공=자유투어]

하지만 이들은 즉시 귀국을 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한 포항시 공무원은 "(유럽에) 주말이 끼어서 10여 명 모두의 비행기 표를 끊기 어려웠다고 한다. 오랫동안 기대하던 유럽 행인데, 도착 하루 이틀 만에 바로 돌아온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당시 공무원들이 머물렀던 오스트리아 빈에는 인천공항까지 매일 1~2편의 대한항공 항공기가 운항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인 독일에서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루프트한자 등 다수의 항공사가 매일 인천까지 운항하고 있다. 체코 프라하에서도 인천공항 직항 편이 운항 중이다. 비행기 표는 궁색한 변명이란 지적이다.

귀국 대신 이들은 일정을 소화했다.

22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일정표에 따르면 10여 명의 공무원은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견학했다. 지진이 발생하던 15일엔 오스트리아 빈에 있었다. 4성급 호텔에 머무르며 건축가 '빈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을 둘러봤다. 16일엔 '벨베데레 궁전' 등을 견학했다.

다음날엔 모차르트의 도시인 잘츠부르크로 이동해 둘러보고 다음 날엔 호수 마을 '할슈타트'를 돌아봤다. 그러곤 체코로 이동했다. 체스키크룸로프를 구경하고, 다시 프라하에 들어가 머물다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이에 대해 포항시 관계자는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직원들이 돌아오려면 비행기 표를 또 사야 해 세금이 낭비될 수 있다. 공무원 10여 명이 3~4일 일찍 들어오려고 큰 예산을 사용했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됐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포항시는 지진 상황 수습 후에 징계 등 후속 조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포항=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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