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공포의 8, 9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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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삼성-기아전은 영화식 표현으로 '흥행이 되는 장사'다.

영.호남 야구를 대표하는 상징성과 이승엽(삼성)-이종범(기아)의 스타 대결, 여기에 해태 시절 사제관계였던 김응룡(삼성)-김성한(기아) 감독 사이의 팽팽한 긴장관계도 흥미를 돋우는 요소다.

지난 28일 광주에서 열렸던 두 팀 경기에는 맛을 돋우는 양념이 추가됐다.

선발투수 임창용의 항명파동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의 삼성이 연승행진으로 3위까지 치고 올라온 기아의 상승세를 막아내느냐에 초점이 모아졌다.

임창용은 26일 기아전에서 3회에 조기 강판된 데 불만을 품고 더그아웃에서 글러브를 내던지는 등 감독 지시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 코칭스태프의 결정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반면 기아는 전날까지 5연승을 달리며 삼성을 5승차로 따라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경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두 팀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피해야 할 구석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주포의 대결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승부는 복병들의 힘대결에서 갈렸다. 기아의 8번과 9번 타자인 김상훈.이현곤의 집중력이 삼성의 벽을 넘었다. 김상훈은 1-1 동점이던 4회말 1사 만루에서 볼넷을 골라 타점을 뽑았다. 이 점수는 기아가 4-1로 이기는 데 결승점이 됐다. 이현곤은 3-1로 앞선 6회말 2사 1, 3루에서 1타점 적시타로 쐐기점을 올렸다.

두 선수의 활약은 비단 이날 경기뿐이 아니었다. 김상훈은 지난 26일 광주 삼성전에서도 0-0이던 3회말 선제 결승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이현곤은 최근 5경기에서 0.294의 타율로 하위타선의 핵이다. 기아 타선의 숨은 '뇌관'인 셈이다.

두 선수의 존재는 수비에서 더 큰 빛을 내고 있다. 프로 4년차인 포수 김상훈의 송구능력은 다른 팀의 쟁쟁한 베테랑 포수들을 능가하고 있다.

김상훈은 올시즌 도루 저지율이 0.577로 8개 구단 포수 중 단연 1위다. 이 페이스라면 1985년 조범현(당시 OB) 현 SK 감독이 기록했던 역대 최고 도루저지율(0.541)을 깰 가능성이 크다.

이현곤 역시 강습타구가 많아 '핫코너'로 불리는 3루를 맡으면서도 올해 1백2경기에 출전, 실책은 불과 3개뿐이다. 8개 구단 주전 3루수 중 가장 실책이 적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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