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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만에 무거운 입 열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언니, 미안해.』
「마유미」는 갑자기 옆에 있던 여수사관의 가슴을 밀치면서 우리말로 말문을 열었다.
서울도착 8일 만인 지난해 12월23일 하오5시쯤 서울시내 모처 안가에서 일본인「하치야· 마유미」로 가장했던 북괴공작원 김현희가 마침내 입을 열면서 가공할 북괴 김정일의 대남 공작 극비지령은 백일하에 전모가 드러났다.
김현희는 서울에 머무는 동안 자유로운 TV시청을 통해 뉴스·드라머 등을 보고 시내관광·백화점구경 등 시민생활의 실제모습에 접하면서 심경변화를 일으키기 시작, 7년8개월의 특수교육으로 철저히 굳어진「위장」의 허울을 끝내 벗어 던지고 26살 처녀의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김은 거리·상가 구경에서 젊은 여성답게 최신의상과 화장품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고 북에서는 상상도 못해본 대통령선거 보도에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고 수사관계자들은 전했다.
수사관계자들과 일문일답을 통해「마유미」가 김현희로 돌아가기까지를 알아본다.

<수사관과 일문일답>
-김이 범인임을 자백한 경위는.
▲김이 한국에 도착한 후 처음에는 중국말과 일본말만을 사용, 외국인처럼 행세했지만 자신이 출생지라고 밝힌 중국에 대해 고아로 자랐다 면서도 중산층이상이 먹는 호떡을 먹었다고 말하거나, 일본에 거주했다 면서도 식사로 주는 김을 종이를 태웠느냐고 묻는 등 진술의 허위성이 밝혀졌으며, 여권 상에 나타나있는 일본출발시기에 일본수상선거가 한창이었는데도 일본수상을 모르는 등 거짓이 드러나 허위진술의 한계성을 못 견디고 북괴공작원임을 자백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김은 음독후유증과 탈진상태로 건강이 악화되어 눈을 감고 누운 채 식사와 진술을 일체 거부했다.
김은 도착 다음날인 12월16일부터 중국어·일본어로 간단한 진술을 시작했고 12월18일 중국어로 햄버거를 요구한 후 밥을 먹기 시작했으나 중국어 시를 써서 소개하는 등 중국인 행세를 했다.
-김의 범행 후 계획은.
▲범행이 성공하고 체포되지 않았을 경우 자신이 일본어가 능통해 일본지역에서 공작활동을 계속하게될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범행이 실패했을 경우 제2의 범행계획도 있었는가.
▲김과 김승일은 이란공항당국에서 건전지 등의 반입이 불가능했다면 제2의 범행준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바레인에서 김이 음독하지 않은 이유는.
▲김이 담배를 꺼내 무는 순간 공항경찰이 담배를 낚아채 독약 앰풀의 끝 부분만 깨지고 독약은 채내로 흡수되지 않아 실패했을 뿐 연극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정일의 친필지령은 어떤 것이며 김의 몸에 칼자국이었다는 일부 외신보도는 사실인가.
▲상처는 없으며 BCG접종흉터가 커 성형수술을 한 흔적은 있다. 김정일의 지령은 일반지령과는 달리 중요한 내용에 관한 지령이며 공작원이 직접 건네 받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설명만 듣는 것이다.
-김이 받은 외국인화 교육이란 어떤 것인가.
▲김은 일본의 해변가를 거닐다 강제 납치된 일본여성으로부터 일본어와 일본인의 생활방식 등을 배웠다. 이 일본인은 납북된 뒤 회유과정에서 김정일이『당신을 살려준 것만 해도 큰 은혜』라고 말했다고 해서 은혜(31)라는 한국이름으로 불리고 있다고 김은 진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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