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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의 책 이야기] 우주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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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벌을 받아 떨어진다는 밑바닥 없는 구렁텅이를 '무저갱'이라고 한다. 차라리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순간의 고통과 함께 두려움도 끝나겠지만, 끝없는 추락의 공포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과학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 이후, 과학자들은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라는 두 가지 무저갱의 공포에 시달려 왔다.

물질을 계속 잘게 나누어 가면 언젠가는 궁극의 물질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잘게 나눈 그 알갱이는 또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단 말인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이 문제에 대해 아주 현명한 답을 내 놓았다.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기본 알갱이(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끝없는 추락의 공포를 교묘하게 피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물질을 잘게 나누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중성자와 양성자 및 전자라는 소립자가 원자를 이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중성자나 양성자를 이루는 더 작은 입자인 쿼크가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물질의 궁극에 관한 무저갱의 공포에 또 다시 직면하게 된 것이다. 과연 그 밑바닥은 어디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브라이언 그린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승산)에서 물질의 궁극을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멋지고 쉬운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모든 물질은 끄트머리가 붙어 있는 아주 미세한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물질 궁극의 모습이 점에서 고리 모양의 끈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이 끈이 무저갱의 밑바닥이라는 증거는 없다. 물질의 궁극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 한 이론일 뿐이다.

우주의 크기가 유한하다면 그 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끝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재너 레빈은 '우주의 점'(한승)에서 우주는 무한히 연결되어 있는 타일과 같다고 설명한다. 유한한 크기의 타일 하나가 바로 우주이다.

로켓을 타고 지구를 떠나 동쪽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로켓은 타일의 동쪽 경계를 지나 옆의 타일로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타일, 즉 우주의 경계를 느낄 수 없다. 그냥 곧바로 나아간다고 생각할 뿐이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우리 앞에 점점 지구가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하나의 실체가 만화경 속에서 수없이 많은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하나의 우주가 위상 기하학적 특성에 따라 수없이 반복되는 영상 우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레빈의 생각이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끈, 허깨비로 가득찬 우주. 자연의 궁극은 과연 실체를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밑바닥 없는 무저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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