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좀 도와주셔야” “어디서 돈 움켜쥐고 있나” 국회는 지금 예산 전쟁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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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신도시에 지역구를 가지고 있다 보니까 참 힘든 게 많습니다. 파출소 신설 예산이 올라와 있는데 이것은 도와주셨으면 하는데 꼭 좀…”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

11월 6~13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진행됐다. [연합뉴스]

11월 6~13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진행됐다. [연합뉴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지난 9일 예결특위 위원들이 부처 장관들을 상대로 정부 예산안에 대한 종합정책질의를 했다. 경기 김포을이 지역구인 홍철호 한국당 의원은 파출소 배정 문제로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읍소했다. 김 의원은 “우리 김포가 전국에서 인구증가율 1위를 수년째 하고 있는데 제가 지역 가 보면 지구대 하나가 맡고 있는 인구가 거의 10만이에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부총리가 “경찰청 자체 신설 심사가 있는데 거기서 통과를 죄송하지만 못 했습니다. 내용은 알고 있으니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고 하자 홍 의원은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도와주셨으면 하고요”라고 다시 부탁했다.

체면 포기 여야 의원들 어떻게든 따 내자 #"예산 때문에 손에 일이 안 잡혀요" #"낙후된 형사기동대 건물 봤나" #"설계비만이라도 꼭 태워달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오른쪽)과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9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오른쪽)과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9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연일 예산 전쟁이다. 바깥에 드러나는 외양은 429조원의 정부 예산안을 놓고 야당의 포퓰리즘 예산 삭감론과 여당의 사람 중심 예산 보전론의 싸움이다. 자유한국당은 퍼주기 예산이라며 4조원 이상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중심 기조가 반영된 첫번째 예산이라며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국회 예결특위 속기록 보니... 

하지만 ‘진짜’ 전쟁은 다른 데 있다. 지역구 예산 따내기 전쟁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지역 현안 사업 관련 예산을 1원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의원들은 체면도 벗어던졌다. 정부에 부탁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법을 우회하라는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본지는 지난 6~13일 국회 예결특위의 속기록을 검토해 봤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민홍철 민주당 의원(경남 김해갑)=남부내륙철도 관련해서 지난번 예비타당성조사에서 0.7밖에 안 나왔기 때문에 만약 이번에 민자적격성 판단도 부적격으로 나오면 조기 착공 공약을 지킬 수 있을까요?
▶김동연 경제부총리=지금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마는...
▶민 의원=그런데 춘천-속초 철도 건설, 대구-광주 철도 건설, 그리고 원주-강릉 이런 것은 예비타당성조사 없이도 착공을 했더라고요. 만약 남부내륙철도도 그런 방식으로 할 수 있는지 검토가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방향으로도 한 번…
▶김 부총리=그때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했던 것은 당시 정부에서 30대 선도 프로젝트라고 해서 특별 취급을 했던 것인데 그 후에 저희가 국회에서 상당히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민 의원=부총리님 말씀 이해하겠는데요.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경남 내륙주민들도 아주 숙원사업입니다. (정부) 재정 사업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
▶김 부총리=하여튼 잘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1보다 적으면 사업타당성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자 이미 수차례 비판이 제기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방식으로 다시 정부 예산을 배정해 철도를 건설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SOC 예산 삭감·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더 치열해진 예산 확보전

해마다 벌어지는 광경이지만 올해는 예산 따내기 각축전이 더 치열하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정부 SOC 예산은 총 14조7000억 원이다. 지난해 19조2000억원에 비해 4조4000억 원(22.9%)이 줄었다. 그런데 내년 6월엔 전국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의원 입장에선 지역 예산을 많이 따내야 지역 의회와 지자체장 선거에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의원들은 아예 대놓고 SOC 관련 예산 처리를 요구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SOC 예산이 소폭 줄었지만 지난해 이월된 예산을 합치면 실제론 전년 대비 95% 수준”이라고 해명했지만 의원들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다.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이낙연 국무총리가 질의를 듣고 있다. 박종근 기자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이낙연 국무총리가 질의를 듣고 있다. 박종근 기자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경기 수원갑)=“인덕원~수원(동탄) 복선전철, 주민설명회까지 다 마쳤는데 왜 기본계획 고시도 못합니까”
▶손병석 국토교통부 1차관=“4개 역사가 추가돼서 설계 적정성 검토를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의원=“무슨 KDI에서 검토하고 있습니까. 작년 10월에 나왔는데. 어디서 움켜쥐고 있는 겁니까”
▶손 차관=“아직...”
▶이 의원=“기재부라고 확실하게 얘기하세요. 무슨.. 아직 그런 게 어디 있어”
▶손 차관=“국토부 생각으로는 노선 전체의 편익을 증대하는 측면과 지역 수용성을 제고하는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이 의원=“언제 할 겁니까. 손에서 이 일이 안 떠나가니까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 지금”
▶손 차관=“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재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예결위 전체회의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재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예결위 전체회의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슷한 얘기가 발언자만 달라질 뿐 계속된다.

“성남-장호원 6공구하고 국지도 70호선 예비타당성조사 500억 범위 내에서 계획된 부분은 설계비라도 꼭 태워서…”(송석준 한국당 의원ㆍ경기 이천)

“강원경찰청의 형사기동대 건물이 있는데 굉장히 낙후되어 있어서...보고받은 적 있으시죠?”(송기헌 민주당 의원ㆍ강원 원주을)

“함양-울산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 4000억을 요구했는데 1200억밖에 반영이 안 되어 가지고”(강길부 한국당 의원ㆍ울산 울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차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가 14일 열렸다. 박종근 기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차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가 14일 열렸다. 박종근 기자

여야는 지난 14일부터 계수조정 예결소위에서 힘겨루기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예산안은 11월 30일 자정까지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2월 1일에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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