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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군 고문 정외 치안본부장도 알고 은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박종철군 고문 치사사건은 발생(87년1월14일) 직후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 등 경찰 최고위간부들이 모두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쇼크사로 은폐·조작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당시 5차장 박처원 치안감은 물 고문 끝에 박군이 숨졌다는 사실을 알고 부검의사에게 「쇼크사에 의한 사망」 이라는 소견서를 작성토록 강요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박군의 사체를 부검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1과장 황적준 박사 (42) 가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일을 기록한 일기장을 공개함으로써 드러났다.
황박사는 그러나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정부(정부) 압박치사」 로·소견서를 써 박군이 고문으로 숨진 사실이 끝내 밝혀졌다는 것.
한편 박군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안상수 변호사 (42)는 12일 『검찰이 상부의 지침에 따라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지 못하고 경찰에 초동수사를 맡겨 사건을 조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 셈』 이라고 밝혔다.
◇황박사의 일기내용=87년 1월15일 하오 4시40분쯤 박치안 치안감의 방에서 박치안 감으로부터『쇼크사로 보이나 3∼4회 욕조에 담갔으니 익사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황박사는 이날 하오9시부터 10시25분까지 부검을 실시한 후 입회했던 안상수 검사에게「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가 분명하다」 고 설명했다.
부검 후 하오 11시30분쯤 치안 본부장실로 갔으며 박치안감은 박군 사체의 모든 외상을 소견서에서 사제토록 요구했다.
경찰간부의 강요에 못 이겨 황박사는▲외표 검사상 특이소견 없음▲우측 폐강에서 출혈반 소견▲사인은 병리조직·독극물 검사 후 판명될 것이라고 작성, 치안본부장 1차 발표 때 부검소견으로 밝히도록 동의했다.
16일 하오에는 강치안 본부장·박치안감 등 합동으로「부검 감정서에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해달라」 는 회유를 받았다.
그러나 황박사는 가족·친구들과 만나는 등 고민 끝에 17일 밤 「모든 사실을 정확히 밝히겠다」 고 치안 본부측에 통보하고 18일 박군이 고문 치사한 것으로 사체부검 감정서를 작성, 19일 치안본부가 이를 공식 발표했다.
◇안상수 변호사의 말=송치 받은 후 4일만에 상부에서 기소명령이 내려와 기소만기를 l5일 남겨놓고 수사를 종결, 구속된 경찰관 2명을 기소했다.
구속된 조한경·강진규등 2명의 경찰관이 구치소에서 심경변화를 일으키자 경찰이 이들을 면회, 회유·협박을 했으나 경찰은 은폐·축소조작부분을 수사하지 못했다.
당시 서울지검 수사팀은 4∼5차례나 조사 및 공소유지 전략을 담은 수사계획서를 상부에 올렸으나 수사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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