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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와 대선 줄세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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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선거 때마다 대박의 유혹을 느끼는 게 A씨만은 아닌 모양이다. 중앙선관위 자료를 보면 이번에도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해 적발된 것이 벌써 60건이나 된다. 2002년에는 경기도에서 특정 시장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공무원 사조직까지 발각됐다. 선거 뒤 그 모임 고문이던 환경미화원이 인사에 개입하고 인허가와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인사권을 쥔 시장과 한 배를 탄다는 유혹을 쉽게 물리칠 공무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니 공무원이 편을 갈라 싸우고, 진 쪽은 권토중래를 꿈꾸며 4년을 기다린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대통령 선거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사관이 사무관 눈치를 보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렇지만 지방의 말단 공무원까지 4년마다 오는 대박의 꿈을 꾸고 있어서야 무슨 행정이 제대로 되겠나. 그런 공무원에게 대민봉사를 기대하는 주민만 불쌍한 셈이다.

심각한 것은 중앙당이 공천 과정에서 이런 잡초를 솎아내지 못하는 데 있다. 오히려 한 술 더 뜬다. 한 야당 의원은 "지방선거는 대선 승리를 위한 교두보 구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지방선거는 이미 지방선거가 아니다. 중앙당은 자치단체장을 줄 세우고, 자치단체장은 지방공무원을 줄 세우는 악순환이다. 시장 당선을 도운 공무원이 대통령 선거를 위해 뛰어다니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나.

대선 지상주의는 여야가 다르지 않다. 열린우리당은 장관 징발령을 내렸다. 워낙 여러 사람을 끌어내다 보니 '여당 후보=장관'이 공식이 될 판이다. 국정운영보다 지방선거 승리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모양이다. 출마를 선언하기도 전에 그 장관들이 지역에 다니며 정치적 발언을 하고, 부내 인사를 코드에 맞추는데 자치단체장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나라당은 공천 기준에 '2007년 대선 기여도와 잠재력'을 넣었다. 지방자치를 잘하는 데 대선 기여도가 왜 필요한가. 무엇에 기여하라는 말인가. 심지어 어떤 의원은 "잘 생긴 개든, 못생긴 개든 집 잘 지키고 주인 말에 절대 복종하는 충성심을 보이는 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자치단체장이든 지방의원이든 소속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위해 개처럼 뛰라는 말이다. 이 지경이 되면 시장을 뽑는 것인지 선거운동원을 뽑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그들에겐 지방선거가 여야 간의 땅따먹기로 보이는 게 분명하다.

그런 후보가 당선돼 지역에 소왕국을 꾸며놓고 인사를 전횡하고, 예산을 낭비하면 죽어나는 건 그 지역 주민이다. 그런데 아직도 특정 정당 상표만 보고 '묻지마 투표'를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시장 후보로 9명이 나선 영남의 한 지방도시. 아무리 여론조사를 해도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래도 분명한 결론은 하나. 누구든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것이다. 주권을 특정 정당에 넘기고, 공천권자의 무책임과 오만을 조장하는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나.

방법은 정책으로 후보를 고르는 길밖에 없다. 최근 큰 호응을 받고 있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한 가지 좋은 수단이다. '추진하겠다' '검토하겠다'고 허풍을 떠는 정책이 아니라 목표.우선순위.기간.예산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이번에는 정말 '중앙당의 개'가 아니라 '오수(獒樹)의 누렁이', 지역 주민에게 충성하는 지역 일꾼을 한번 뽑아보자.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