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어른' 없는 나라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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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살해사건의 피해자 허모양의 장례식이 22일 치러졌다. 유족들이 고인의 영정을 들고 화장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어린것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일찍…. 그 어린것이…."

22일 오전 6시 경기도 고양시 관동대 명지병원 장례식장. 동네 아저씨에게 성추행당하고 목숨까지 빼앗긴 초등학생 허모(11)양의 발인제는 유족과 조문객 등 50여 명의 오열 속에서 시작됐다. 하늘도 비통해 하는 듯 눈물 같은 비를 뿌리는 가운데 허양의 부모는 울음을 애써 참다 끝내 "내 딸 살려내라"며 울부짖었다. 발인제는 허양이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불공을 드린 뒤 간단히 끝났다.

허양의 시신을 실은 버스는 오전 6시30분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유족.조문객과 함께 오전 7시10분쯤 허양이 다니던 서울 용산구 K초등학교 교정을 찾았다. 교장 등 교직원 50여 명이 두 줄로 늘어서 정문으로 들어오는 운구차를 맞았고, 운동장에는 방학 중임에도 학부모.학생 등 200여 명이 나와 어린 원혼을 달랬다. 허양의 영정은 친척의 손에 들려 운구차에서 내린 뒤 교장.담임교사 등과 함께 정든 교정을 천천히 돌았다.

같은 반의 한 학생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 공부한 친구가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허양의 시신은 오전 9시50분쯤 고양시 서울 벽제화장장으로 옮겨졌고 유족들은 분홍색 옷을 입고 환하게 웃는 허양의 영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초췌한 모습으로 딸의 유골 수습 과정을 지켜보던 허양 아버지는 영정을 두 팔로 꼭 끌어안으며 "아빠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지 사랑한단다"라며 흐느꼈다. 넋이 나간 듯 화장 장면을 지켜보다 분골 항아리를 받아든 허양의 어머니는 항아리에 붙은 딸의 이름 석 자를 떼어 주머니에 고이 넣은 뒤 화장터를 떠났다.

허양은 17일 오후 7시쯤 심부름 가던 길에 이웃집 김장호(53.구속)씨에게 성추행당한 뒤 살해돼 경기도 포천에서 불태워져 버려졌다.

고양=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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