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청와대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수순에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귀국에 앞서 국회에 홍종학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20일까지 채택해달라는 요청서를 전자결재를 통해 보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10일 홍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을 진행한 뒤 지난 13일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하려 했다. 하지만 홍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야당의 반대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고 채택 시한(10월 14일)까지 넘기자 청와대가 움직인 것이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가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받은 뒤 20일 이내에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의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보고서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다. 그 기간이 지난 뒤에도 국회가 보고서를 보내지 않으면 대통령은 해당 후보자를 임명할 법적 근거를 갖게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홍 후보자를 임명할지 여부에 대해 “아직 현재 단계에서 말할 수 없다”며 “국회가 잘 판단해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임명 여부를) 미리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국회가 문 대통령의 재송부 요청에 응해 보고서를 채택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날 요청은 닷새 뒤인 20일 이후에 홍종학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홍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이번 정부에서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안 된 채로 장관(급)으로 임명되는 다섯 번째 사례가 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청문 보고서 없이 야당의 반발 속에서 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았다.
청와대가 ‘쪼개기 증여’ 의혹 등으로 논란을 빚은 홍종학 후보자 임명 절차를 밟는 배경에는 지난 10일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홍 후보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다소 수그러졌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에서 야당이 확실한 한 방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언론 평가에도 기대는 모습이다.
청와대 입장에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이유도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15일로 출범 190일째를 맞았다. 김대중 정부의 ‘최장 내각 구성’ 기록인 174일을 이미 열흘 넘게 훌쩍 뛰어넘었다. 홍 후보자가 만일 낙마하면 정부 출범 초기 차관급 이상 고위직 낙마자 숫자도 8명으로 늘어 박근혜 정부(7명) 기록을 능가하게 된다.
그럴 경우 인사검증 책임자인 청와대의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까지 책임론이 불거지는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홍 후보자를 임명할 경우 야당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유한국당ㆍ국민의당ㆍ바른정당이 한목소리로 임명 불가 방침을 밝히고 있고, 야권의 반발이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아직 지명도 안 한 감사원장 후보자의 인준에까지 영향을 끼쳐 난항을 겪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격적인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이 포함된 새해 예산안 심사에도 야당 협조를 얻기도 어려워질 수도 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