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민정당의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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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3대 총선에 임하는 민정당의 전략은 한마디로 안정 다수 의석 확보에 1차 목표를 두고 나아가 일본 자민당처럼 거대집권당과 군소야당의 정계 구도 실현을 겨냥하고 있다.
민정당이 생각하는 안정 다수 의석은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들을 차지하고서도 본회의와 각 상임위에서 과반수 의결을 할 수 있는 선을 뜻한다.
따라서 민정당이 총선시기 및 국회의원선거 제도에 관한 대야협상과 공천작업에 있어서도 이 목표의 실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민정당은 이번 총선을 어느 때보다 유리하게 치를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야당이 분열돼 있고 양김씨에 대한 여론의 역풍이 계속되고 있으며 야권측의 인물축적이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천만 잘하면 이번 총선은 걱정할 것 없다는 분위기 같은 것이 있다.
민정당이 이처럼 비교적 여유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대통령선거 후 조성된 여야 관계 변화와 국민들의 투표성향에 대한 나름대로의 새로운 분석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러내놓고 표현은 안하고 있지만 민정당은 내심 양김씨가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 야당 세력은 이번 대통령선거로 그 능력에 한계가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이제 여당 약속대로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민주화를 실천해나가면 종래 투쟁일변도 야당은 점점 설땅이 좁아들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잘만하면 일본식 거대여당의 존립 근거가 마련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진가를 발휘했던 민정당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선거 후 김영삼·김대중씨의 처신과 그것을 보는 국민의 시각에는 민정당의 새로운 시도를 뒷받침할만한 충분한 징후가 보이더라는 것이다.
최근 민정당이 몇차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이 진 이유로 74%가 양김씨의 분열을 지적했으며 정부·여당의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대답은 5%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또 36%를 얻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75%가 인정한다고 했고, 특히 서울에서 81%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
이밖에 전반적인 여론의 추세가 종래 야당의 투쟁적 슬로건에 식상해 했으며, 특히 선거결과를 부정하는 양김씨의 견해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반대로 노태우당선자의 공약실천에 지대한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에 표를 던졌던 사람들까지 선거 후에는 「군정종식」이나 「독재타도」등 투쟁적 이슈에 대한 집착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민정당은 이같은 여론조사결과를 토대로 공천을 통해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을만한 인물만 잘 고르면 굳이 선거제도 조정에서 무리하지 않더라도 안정 다수 확보가 무난하리란 계산인 것 같다.
민정당이 선거법 협상에 들어가기도 전에 공개 공천신청을 받아 여권 정치 지망생들을 총망라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인물존중」 캠페인이며 유능한 인재가 먼저 야당을 노크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노린 것 같다.
이번 민정당의 공천은 선거전략상으로도 중요하지만 이른바 국정쇄신과 정치적 신진대사를 약속한 노당선자의 정치 프로그램을 처음 내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른바 문민정치와 민주화공약의 실천을 뒷받침할 만한 노태우컬러가 나타나느냐와 제5공화국의 인기를 떨어뜨리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인사의 난맥상을 시정하는데 얼마나 결단력을 보이느냐가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최근 민정당내에는 많은 인사들의 고공낙하설과 함께 그것을 노당선자가 물리칠 수 있을 것이냐 여부에 관해 설왕설래가 많다. 노당선자가 민정당에 자기 사람이 별로 없고 전두환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으로 인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견이 크게 상충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사람」을 통해 두 정권의 차이를 분명히 해야 국민적 신뢰를 받고 총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민정당은 선거시기결정이나 선거제도 절충에는 가급적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운 무리를 하지 않을 작정이다. 야당에 「탄압」이나 「독주」라고 걸고 넘어질 쟁점을 주지 않음으로써 유권자의 여당 견제심리를 촉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2월총선, 1구1∼4인제를 당론으로 내세웠지만 그것도 무리를 해서라도 꼭 관철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야당이 합리적인 1구1인제 안을 제시하면 얼마든지 절충에 응해 승자독점·독식체제를 청산하는 여당상을 보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통령선거로써 웬만한 약점은 다 거른만큼 앞으로 명분상 크게 책잡힐 짓만 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야당의 공격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인물·정책대결로 끌고감으로써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제도는 야당이 주장하는 1구1인제로도 해볼만하다는 속셈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민정당은 공약실천을 통한 노당선자의 정직하고 신선한 이미지와 새로운 여당의 모습을 심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
이미 공약 조기실천추진팀을 가동시켰으며 총선에 앞서 대사면 등 가시적인 실적을 쌓고 노당선자의 지방순방등을 통해 유리한 총선 분위기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민정당이 꼭 순항하리라고 만은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민이 신뢰할만한 인물들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원하는 사람은 합류를 주저하고, 고개를 내미는 사람은 노태우컬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향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또 소선거구가 될 때 당장 눈앞의 당선 가능성 때문에 민정당의 환골탈태에 도움이 안 되는 현역의원과 여권인사들을 다수 안고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당내민주화를 앞세운 통제기능의 약화로 공천 탈락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도전해 올 때 그 처리도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얼마만큼 달라질지도 변수다. 야당이 통합 또는 능률적 연대에 성공한다면 민정당의 총선 전략은 근본부터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전 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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