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 검토"… 천 법무 "가석방 없는 종신형제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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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법무부는 사형제도를 없애는 대신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키로 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21일 '법무부 변화 전략 계획'을 발표하면서 "사형제의 존폐 여부를 예단없이 심층적으로 연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그동안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천 장관은 "사형제 폐지 주장이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국제사면위원회가 우리나라를 사형제 폐지를 위한 캠페인 대상국으로 선정한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법무부는 정책위원회 심의와 공청회 개최 등을 거쳐 6월까지 연구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법무부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2004년 12월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등 175명의 의원이 발의한'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의 국회 심의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사형 폐지 법안은 사형을 폐지하고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 '시기상조' 대 '진일보한 결단'=국내 사형 폐지 논의는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1989년부터 본격화됐다. 2004년 사형 폐지 법안이 상정된 것을 계기로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에서는 국회에 사형제 폐지 의견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법원.검찰 등 법조계에서는 사형제 폐지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87년 9월 "범죄로 인해 침해되는 또 다른 귀중한 생명을 외면할 수 없고, 사회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국가 형사정책상 사형제 존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사형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96년 11월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6월 법무부는 '국민의 3분의 2가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고, 흉포한 인명 살상범이 극형에 처해지지 않는다면 일반의 정의감에 배치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등 사형제 폐지를 반대해 왔다.

정상명 검찰총장도 지난해 11월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강력범이나 흉악범이 적지 않은 현실에 비춰 아직은 논할 때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천 장관의 이날 발언은 사형제 폐지를 위한 첫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법무부 정책기획단 관계자는 "천 장관의 발언은 사형제를 폐지하려는 유인태 의원 등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수 고려대 법대 교수도 "법무부가 용기있고 진일보한 결단을 내렸다"며 "생명을 파괴하는 제도를 없애 국제적 인권기준으로 올라서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미결수는 63명이다.

◆ 수형자 선거권 부여 추진 논란=법무부는 과실범 등 일부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행 형법과 공직선거법에서는 사형.무기수는 선거권을 박탈하고, 유기수는 형집행 종료까지 선거권을 정지토록 하고 있다. 법무부는 수형자에 대해 선거권을 부여한 외국 실태를 연구해 관련 법률의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4년 3월 수형자의 선거권 박탈을 규정한 공직선거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려 법률 개정 과정에서 논란 가능성이 크다.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발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문병주.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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