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파헤치기]찍을 땐 ①②보다 ④ 골라라? 과연 맞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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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수능을 앞두고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 담에 '수능대박' 글씨가 써있다. 수능은 모든 과목이 5지선다 객관식으로 이뤄지는 시험이다보니 다양한 '찍기 비법'이 전해진다. [연합뉴스]

16일 수능을 앞두고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 담에 '수능대박' 글씨가 써있다. 수능은 모든 과목이 5지선다 객관식으로 이뤄지는 시험이다보니 다양한 '찍기 비법'이 전해진다. [연합뉴스]

수험생 여러분!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16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네요. 시험 당일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어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찍어야' 하는 상황도 생길 거에요.

최근 10년간 수능 기출문제 분석 #국어, 정답에 ① ② 적고 ③④⑤ 많아 #수학 주관식 정답, 10년간 0과 1 없어 #같은 숫자가 두 번 정답인 경우도 전무

수험생들 사이엔 이른바 '찍기 비법'이라는 게 있는 것 같더군요. 수능은 수학 주관식 문제(모두  9문항)를 제외하곤 모두 5개 보기 중 하나를 정답으로 고르는 '5지선다형' 객관식이죠. '정답을 도통 모를 때는 몇 번을 찍어라' 이런 속설 정말 믿어도 될까요.

중앙일보는 지난 10년간(2008~2017학년도) 수능 국어·수학·영어(옛 언어·수리·외국어) 기출문제 정답을 분석해 봤습니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홈페이지에선 기출문제로 '홀수형'만 제공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분석도 홀수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중에서도 2008~2011학년도의 수학 가형 심화 선택과목 문제, 그리고 출제 오류로 복수정답이 인정된 2016학년도 영어 문제 1개는 제외했습니다.

홀수형만 분석하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수험생 여러분이 고사장에서 홀수형·짝수형 중 무엇을 받게 되느냐 역시 '운'이니 양해해주세요. 자 그럼 이제부터 '찍기' 속설에 대한 검증 들어갑니다

'아는 것만 나오게 해주시고, 모르는 것도 찍어 맞추게 도와주소서.' 지난해 한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지 배부를 기다리는 수험생이 손모아 기도하고 있다. [뉴스1]

'아는 것만 나오게 해주시고, 모르는 것도 찍어 맞추게 도와주소서.' 지난해 한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지 배부를 기다리는 수험생이 손모아 기도하고 있다. [뉴스1]

속설: ①번, ②번보다는 ④번을 찍어라?
검증 결과: △ 

5지선다형이라면 ①~⑤번까지에서 정답이 각각 20%씩 나오는 게 이상적이죠. 정답이 특정 번호에 쏠리지 않도록 출제자가 고려한다면 말이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정답 비중을 자세히 밝히지는 않고 있어요. 이례적으로 2004년에 출제 매뉴얼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매뉴얼에는 '번호 쏠림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요.

2004년 평가원이 공개한 수능 출제 매뉴얼. 답지를 검토할때 특정 답지에 편중되어있지 않은지 살펴보도록 하고 있다.

2004년 평가원이 공개한 수능 출제 매뉴얼. 답지를 검토할때 특정 답지에 편중되어있지 않은지 살펴보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수험생들은 ④번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고 '주장' 합니다. 사실일까요?

국어 먼저 볼까요? 지난 10년간 수능에서 ①·②번이 정답인 경우가 각각 18% 정도였습니다. 반면 ④번이 정답인 문제는 21.8%로 이보다 살짝 높았어요. ⑤번은 21.3%, ③번은 21%로 ④번보다 낮긴 하지만 ①·②번보다는 높네요.
①·②번인 정답인 문제가 다른 번호에 비해 적은 것은 맞아요. 그렇다고 ④번이 정답일 확률이 항상 높다고 생각해도 안 됩니다. ③번이나 ⑤번 정답이 가장 많이 나온 해도 적지 않거든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제 수학을 살펴 볼까요? 수학은 각 번호의 정답률이 20%로 거의 균등합니다. 수학 객관식은 모두 21개인데, 각 번호마다 4~5개씩 정답을 나눠가집니다. 어느 한 번호가 유리하다기보다는 번호마다 비율이 균형적이란 점을 참고할 만합니다.

영어도 수학과 비슷합니다. 어느 번호의 정답이 많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20%안팎으로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①번의 비율이 미세하게 적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번호들과의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①·②번보다 4번이 잘 나온다는 속설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믿고서 ④번을 찍기는 어려워보입니다. 답은 '△' 입니다.

속설: 같은 번호가 여러 번 연속해서 나오지는 않는다?
검증: △

지난해 수능은 오랜 만에 '불수능'으로 불릴 만큼 어려웠는데요. 특히 1교시 국어 '짝수형'을 받은 수험생들은 첫 페이지부터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1번부터 4번 문제까지 처음 4개 문항의 정답이 네 번 연속으로 ④번이었기 때문이죠.

지난해 치러진 2017학년도 수능 국어 정답표. 1번부터 계속되는 4번의 행진이 수많은 수험생을 당황시켰다. (4444(5)44의 위엄)

지난해 치러진 2017학년도 수능 국어 정답표. 1번부터 계속되는 4번의 행진이 수많은 수험생을 당황시켰다. (4444(5)44의 위엄)

수험생들은 "시작하자마자 ④번만 계속 나오는데 '내가 답을 틀린 게 아닌가' 싶어 식은땀이 흘렀다"고 합니다. 반면 홀수형에선 첫 문제의 정답은 ②번이고, 두번 째 문제부터 정답이 세 번 연속으로 ④번이어서 충격이 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이처럼 똑같은 번호가 연속으로 정답인 경우는 드문 사례일까요. 국어·수학·영어 3개 과목의 '홀수형'만 대상으로 분석했기 때문에 확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능에서 같은 번호가 네 번 이상 연속으로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문것이 사실입니다.

10년간 '홀수형'에서 네 개 문제 연속으로 같은 번호가 정답이었던 경우는 단 한차례 뿐이었습니다. 2016학년도 영어에서 25~28번 문제의 답이 모두 ④번이었습니다. 특정 번호가 다섯 문제 이상에서 연속으로 정답인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번호가 두세 번 연속으로 나오는 경우는 흔합니다. 같은 번호가 두세번 연달아 나온다고 틀렸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문제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요.

속설: 수학 주관식 정답은 '0' 아니면 '1'인 경우가 많다?
검증: X

흔히 수학 주관식 문제에서 막히면 '-1'이나 '1' '0'을 정답으로 쓰라는 속설이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속설은 틀립니다. 우선 수능 답안지에 음수를 쓸 수 없기 때문에 '-1'은 답이 될 수 없고요. 최근 10년간 주관식 정답으로 '0'이나 '1'이 등장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수능 2교시 수학 답안지. 주관식은 0~999까지 표시할 수 있게 돼 있다.

수능 2교시 수학 답안지. 주관식은 0~999까지 표시할 수 있게 돼 있다.

수능은 답안지로 OMR(Optical Mark Reader)카드를 사용하는데요, 수학 주관식 정답은 세 자리까지 숫자를 표시할 수 있게 돼있습니다. 소수나 음수는 표시할 수 없고 0~999까지의 자연수 1000개 중 하나가 답인 셈이죠.

수학은 30개 문제 중 9개가 주관식인데, 10년간 A·B형, 또는 가·나형 중 어디에서도 '1'이나' 0'이 답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속설은 틀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정답으로 가장 자주 나온 숫자는 뭘까요. 바로 '12'입니다. '12'는 최근 10년간 2016학년도 수능 단 한차례만 빼고 아홉 해에 걸쳐 빠짐없이 답으로 등장했습니다.

'12'에 이어 자주 등장한 정답은 '11'입니다. 2010, 2013학년도 두 번만 빼고 10년 중 8년간 정답으로 나왔습니다. 이어 '16'이 일곱 해, '20'이 여섯 해, '19'가 다섯 해 정답으로 출제됐습니다. 흔히 '1'이나 '0'에 이어 잘 나온다고 알려진 10, 행운의 숫자로 많이 선택되는 7은 각각 네 해 출제됐네요.

주관식 답으로 자주 나온 숫자를 보면 두자리 숫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10년간 주관식 정답 중 0~9처럼 한자리 숫자가 정답인 비율은 10%, 세 자리 숫자(100~999)는 9%에 불과한 반면 두 자리 숫자가 정답이었던 비율은 81%를 차지했습니다. 매해 한 자리 숫자나 세 자리 숫자가 정답인 문제가 각각 하나씩 나오고 나머지는 두 자리 숫자가 정답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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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어요. 10년간 수학 주관식에서 똑같은 숫자가 서로 다른 두 문제의 정답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홉 문제의 정답은 각각 다른 숫자였다는 점도 재미있네요.

주관식에서 정답을 찍어서 맞출 확률은 산술적으로 1000분의 1에 불과하죠. 요행을 바라는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0'과 '1'이 10년간 안나오다가 이번 수능에서 답으로 나오지 말란 법도 없어요.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수험생들이 찍는 문제마다 정답에 꽂히길 기원합니다. 수능 대박 나세요.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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