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게 정의 말고, 일상에 집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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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29면

요즘 재미나게 보는 TV 예능 프로그램 하나, JTBC ‘한끼줍쇼’다. 국민 MC라 일컫는 이경규ㆍ강호동 씨가 숟가락 하나 들고 저녁 시간에 다짜고짜 어느 집의 벨을 누른다. ‘대한민국 평범한 가정의 저녁 밥상을 나눈다’는 프로그램 취지에 따라서다. 취지는 좋다지만 녹록지 않다. 두 MC가 각각의 게스트와 함께 어느 집 밥상머리 앞까지 가기까지 숱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지인 밥 챙기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방송이다. 문 열기에 앞서 온갖 걱정이 들 터다. ‘집 청소도 못 했고, 화장도 안 했고, 번듯한 찬거리도 없는데….’ 솔직히 지난해 10월 첫 방영 소식을 듣고 프로그램이 흥행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민낯을 모두 공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문 열어줄 이가 있을까 싶어서다.

소망하는 2018년 트렌드

그런데 방영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동시간대 시청률 1ㆍ2위를 다툰다. 어느 동네를 가도 프로그램 자체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대문도 잘 열어준다. 각박한 세상,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는 맛 덕에 흥행했다는 이야기도 맞다.

그런데 눈길이 가는 건 소박한 밥상이다.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빌라든 단독주택에 살든 우리네 먹고사는 밥상은 비슷비슷하다. 먹던 밥상에 계란 후라이나, 생선구이 하나 더 올릴 뿐이다. 어머니 손맛 담긴, 잘 익은 김치가 냉장고에서 나온다면 금상첨화다. 두 MC가 식사에 앞서 밥상 위에서 찍는 한 컷은 맛집과 잘 차린 밥상 사진으로 가득한 SNS 속 세상과 분명 다르다. 가장 진솔한, 일상의 민낯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니, 각종 트렌드 북이 쏟아진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8』을 선두로, 모마일 트렌드를 분석하거나, 라이프 트렌드를 분석한 책도 나왔다. 트렌드를 파악하고 빨리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벌써 모 증권사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새로 출간된 트렌드 북 관련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나섰다. 책을 훌훌 넘겨 읽어봤지만, 새로운 트렌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힐링’이 ‘로하스(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삶)’에서 북유럽의 ‘휘게(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로 갔다가 ‘욜로(한번 사는 삶)’를 거쳐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까지 온 것 같달까.

아, ‘워라밸’ 세대도 있다. 일과 삶의 균형(Work-Life-Balance)의 줄임말이다. 이쯤 되니 트렌드 분석이 아니라 신조어 싸움에 이른 것 같다. 내년 연말에는 그 후년의 트렌드를 뭐라 진단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마 비슷하게 살 것이다. 그러니 ‘한끼줍쇼’의 저녁 밥상에 더 마음이 간다. 가식 없는, 우리 일상의 민낯을 기억하고 응원하고 싶다. 이 또한 트렌드라 할지라도.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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